혁신적인 창작과 창업활동을 돕는 '메이커스페이스'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메이커스페이스는 국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능 창작활동공간(일반형)과 전문메이커 대상으로 지역 내 일반랩과 창업지원 인프라를 연계하는 거점공간(전문형)으로 조성되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 부흥 추진'을 위해 2022년까지 전국에 350여개의 메이커스페이스를 가동할 예정이다. 아시아경제가 혁신성장과 혁신창업의 현장을 찾아간다.
[메이커스페이스를 가다]<4>릴리쿰 스테이지
[아시아경제 이은결 기자] '드드드드득'
'드.드.드.드로잉 자수' 수업이 진행 중인 서울 연남동 메이커 스페이스 '릴리쿰 스테이지(릴리쿰)'. 지난 12일 찾아간 릴리쿰 작업장에서는 컴퓨터 자수기가 500spm(분당 자수속도)으로 실과 바늘을 꿰어내고 있었다. 수 분 진동이 지나간 후 촘촘한 박음질로 완성된 형형색색의 자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점 한점 실을 엮는 바늘처럼 스티치 패드로 화면에 디자인을 그려보세요. 도안을 벡터파일로 변환해 자수기에 전송하면 이렇게 자수가 나옵니다. 간단하죠?"
릴리쿰에서 자수 장인으로 통하는 '까나리'씨가 이날 수업에서 오픈소스 자수 프로그램 사용법과 자수기 작동법 등을 전수했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나만의 자수'를 제작했다.
수업에 참여한 디자인학과 재학생 전주화(24)씨는 "제가 더욱 선호하는 디자인을 찾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어 오게 됐다"며 "앞서 코딩을 배워봤고 레이저 커팅 수업도 신청해 들을 예정"이라고 했다. 지난 1월부터 릴리쿰의 워크숍에 참여해왔다는 다른 한 수강생은 '밀크티 패키지'를 소량 제작해 판매하는 등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릴리쿰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메이커 스페이스 구축 사업에 일반랩으로 선정돼 과학·기술·예술 분야 메이커 활동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일반랩은 전문랩과 달리 생활반경에서의 접근성, 아이디어 구현, 타인과 공유가 용이한 창작공간이다.
2012년 '땡땡이공작'이라는 모임에서 출발한 릴리쿰은 모든 이의 '실험 무대'를 자처하고 있다. 직조부터 도예, 목공, 출판, 3D프린팅 등 디지털 패브리케이션까지 모든 제작분야를 망라한다. 또 나이·성별·성정체성·인종·장애 등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열린 창작공간을 표방한다. 이런 운영 철학에 따라 6명의 관리자들은 서로를 '호랑', '물고기', '까나리', '결' 등 스스로 불리고 싶은 별명으로 호칭한다.
주로 디자인 등을 전공한 운영자들은 메이커 운동을 펼쳐오며 수공구는 물론 첨단장비를 수준급으로 다룬다. 릴리쿰에 구비된 열두대 디지털 장비를 사용하고 가르쳐주는 것은 기본이다. 상주 운영자인 물고기씨는 "놀이와 수공제작으로 시작한 릴리쿰은 기술에 대한 이해와 예술적 결합에 주목하고 있다"며 "특정 분야에 전문적이라기보다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면서 공부하고 실험하는 활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리즘을 추구하는 만큼 릴리쿰에는 실패 사례가 많다고 한다. 릴리쿰은 실패담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매달 '월간실패'라는 아트북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호랑'이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선윤아 대표는 "릴리쿰(Reliquum)은 라틴어로 '잉여'를 뜻하지만 우리는 실패한 낙오자로서의 잉여가 아닌, 실패도 받아들이면서 잉여의 의미를 좇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선 대표는 "릴리쿰은 기술과 예술, 사람이 즐겁게 조우하는 공간"이라며 "누구나 자기만의 속도로 '만들기'를 해 주변 세계를 다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고, 그저 소비하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춤추는 제작·놀이·실험 무대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릴리쿰에는 일주일에 약 20~30명의 메이커들이 다녀간다. 컴퓨터 자수, 레이저 커터, 리소그라피 등 다양한 워크숍과 연구모임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회원제로 '니들 클럽'·'프린트 클럽'·'팹 클럽'도 운영 중이다. 두 개층(약 99㎡)으로 구성된 릴리쿰의 2층은 전시공간 겸 작업공간, 도서관, 열린 주방으로 활용되며 3층은 회원들을 위한 전문 작업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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