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 전도연 "아팠죠, 그래도 고통 넘어설 힘 느꼈어요"

세월호 유족 삶 다룬 영화 '생일'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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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고 힘들어 외면한 기억들...감정소모 너무 커 수면장애 앓아

성찰과 자각, 그 속에서 위로를...연대의식 통해 살아갈 힘 얻어


반복되는 참사는 아픈 기억을 꺼내온다. 사람들은 흔히 망각을 선택한다. 고통을 피하려는 심리적 경향일 것이다. 참혹한 기억은 남은 사람들에게 참아내기 어려운 괴로움을 전하므로. 망각은 이런 아픔에서 벗어나는 쉬운 선택이다. 인간다움을 놓칠 수 있다. 하지만 기억을 이어가는 삶 또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은 그렇게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 정처 없이 떠돈다. 서글프고 공허한 사회. 4 ·16 세월호 참사 5주년을 앞둔 우리의 얼굴이다.

누구는 정의와 단죄, 누구는 회복과 화해를 말한다. 하지만 기억의 기록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이뤄져야 진실에 닿을 수 있다. 나아가 합당한 치유와 보상, 유사사건의 재발방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공동체 회복 등의 길이 열린다. 배우 전도연(46)이 어렵게 용기를 낸 이유다. 그녀는 세월호 유족의 삶을 다룬 영화 '생일'에서 주연한다.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남을 그린다. 감정을 억누르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이다. 전도연을 휘감은 감정은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 잔물결을 일으킨다. 화장지를 탁자 위에 준비해 놓고 인터뷰를 할 정도다. 충혈이 된 눈으로 그녀는 당부했다. "연대 의식이 필요해요."


-개봉 시기가 적절한지 논란이 있어요.

"저 역시 출연을 두고 많이 고민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으며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니까 당시 느낀 무기력이 다시 찾아오더라고요. 많은 분들께서 비슷한 이유로 기억을 외면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힘들고 아프니까. 그렇다면 이런 영화는 언제 나와야 할까요? 어제? 내일? 둘 다 아니라면 오늘이라고 생각해요. 촬영을 마치고 찾은 진도 팽목항에서 확신했어요. 그곳이 기억 저편 너머에 있는 빛바랜 곳으로 느껴졌거든요.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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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에 대한 추모와 산 자의 애도에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적지 않아요.

"겁이 나죠. 배우로서도 영화가 온전하게 평가되지 못할까봐 두려워요.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게 보시는 듯해요. 그것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누군가는 본바탕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 그 부분을 충분히 인정하며 이해하고 있어요."

-지금도 순남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생일 촬영을 마치자마자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찍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 것 같았지만 그렇게라도 정신을 다른 곳에 집중하고 싶었죠. 그런데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겠더라고요. 수면장애였어요. 감정 소모가 커서 생긴 장애였죠. 어제도 겪었어요. 인터뷰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제대로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혹여 한 마디라도 실수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죠. 지금도 카메라 앞에 선 기분이에요. 극장에서 이 영화가 내려갈 때까지 계속될 것 같아요. 후회하진 않아요. 누구나 저마다의 숙명이 있는 법이니까."


-유족의 삶을 처음 조명한 극영화에요. 한밤중에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를 반기는 얼굴 등이 그들에게 또 다른 기억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아요.

"순남의 일상에서 인지하시는 게 많을 수밖에 없겠죠. 그래서 연기하기가 무척 힘들었어요. 제가 느끼는 슬픔과 순남의 그것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했거든요. 카메라 앞에 설 때마다 감정의 수위를 계속 의심했죠. 표현이 잘 됐는지 모르겠어요. 12년 전 아이 잃은 슬픔을 연기한 '밀양(2007년)'보다는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니까 받아들이는 감정의 폭도 넓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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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관객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어요. 먹고살기 바빠서 소홀한 가족의 모습 등이 관객을 성찰과 자각이라는 불편한 진실로 안내해요.

"저는 만날 반성하며 살아요.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을 것 같아서(웃음). 성찰과 자각에 다가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가족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분들이 더 많을 거예요. 위로받을 수 있는 이웃이나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실 수도 있고.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준다고 생각해요."


-순남도 아들의 생일 모임에서 연대 의식을 통해 살아갈 힘을 얻죠. 그것이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아마 죽을 때까지 살아갈 이유를 찾을 거예요. 생일 모임의 시간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니까.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네 삶이라고 다를까요? 그 대상만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는 행복을, 누구는 성취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잖아요. 저 또한 인간적으로 성숙하려고 노력해요. 스스로 바르다고 자부하지만 다른 이의 삶을 보며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죠.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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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가량의 생일 모임 시퀀스를 롱테이크(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로 촬영했어요. 영화에서 강조하는 연대 의식의 힘을 체감했을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용기를 얻었어요. 사실 대본 리딩에서 이 시퀀스를 기피했어요. 한데 모여서 대사를 읽는데 모든 배우들이 힘들어 하더라고요. 저 역시 다르지 않았고. 실제 촬영에서는 그들과 함께 해서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몰라요. 무더운 여름 날씨에서 이틀 간 촬영을 무사히 버틸 수 있었어요. 울고 웃으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죠.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고통을 매개로 낯선 사람들과 관계함으로써 망각이나 고통을 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군요.

"맞아요. 그래서 각자의 방식대로 추모와 애도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홀가분한 기분을 기대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마음을 짓누르는 돌덩이 하나는 내려놓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이유로 이 영화에 출연하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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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관람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만든 영화가 아니에요. 그저 편견과 오해에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그 목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신다면 우리들이 살아갈 내일을 만들 힘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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