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규제샌드박스의 첫 심의 결과 블록체인 기반 송금업체가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달러나 원화 등을 송금할 때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는 사업모델인데 유관부처에서 가상통화와 관련이 있다고 지레짐작해 반대했기 때문이다. 규제를 없애겠다며 도입한 규제샌드박스가 또 다른 차별을 낳은 셈이다. 블록체인은 육성하고 가상통화는 차단한다는 정부 입장과도 상충한다는 지적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ICT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첫 심의위원회 결과 블록체인 기반 송금업체 '모인'이 신청한 안건은 제외됐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부처간 합의가 되지 않은 측면이 있어 첫 심의 결과에서는 제외됐다"며 "다음 심의위에서 다시 다룰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인 관계자는 "보수적인 금융당국보다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높은 과기정통부 쪽으로 규제샌드박스를 신청하는 것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신청했는데 이 같은 장벽에 부딪치니 당황스럽다"고 털어놨다.
모인이 제외된 배경에는 기획재정부와 법무부의 우려가 작용했다. 모인은 은행 간 해외 송금 시장을 독점하다시피했던 국제은행간송금협회(SWIFT) 망이 아니라 블록체인 기반의 송금망을 이용하는 소액송금업을 하고 있다. 스위프트망은 속도가 느리고 수수료가 비싼 반면 중개자가 없어 위ㆍ변조가 어려운 블록체인망을 이용할 경우 수수료가 저렴한 해외송금 서비스가 확대될 수 있다. 모인은 이 같은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외국환거래법상 은행에 비해 소액해외송금업자에 적용되는 낮은 송금한도를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 은행이 아닌 소액해외송금업자들의 경우 건당 3000달러, 연간 3만달러로 송금이 제한돼 있다. 사업 및 유학자금을 보내기에는 현실적이지 않은 한도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기재부와 법무부는 모인이 규제샌드박스의 통과사례가 될 경우 가상통화 시장의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모인이 이용하는 블록체인 송금망이 리플사의 솔루션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가상통화 리플에 투기 세력이 몰릴 수 있다는 걱정은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도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통화를 분리 대응한다는 정부 입장과도 충돌한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의 희망처럼 바라보고 있는데 이처럼 정부 입장이 완고한 줄은 몰랐다"며 "규제샌드박스 제도의 진정성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규제샌드박스와 관련해서는 문재인 대통령도 전일(12일) 국무회의에서 부작용을 강하게 질타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규제샌드박스는 혁신경제의 실험장인만큼 새 기술과 서비스가 국민 생명과 안전, 건강에 위해가 되지 않는 한 '선 허용, 후 규제'의 원칙에 따라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규제샌드박스 심의 절차가 기업 입장에서 또 다른 장벽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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