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팀] 노인들이 위험하다. 젊은 시절 온갖 풍파를 겪으며 생존과 자식들 뒷바라지에 매달렸다. 그리고 이들에게 찾아온 노년은 아프고, 지루하고, 궁핍하고, 우울하다. ‘준비되지 않은 노년은 재앙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길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노인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었다.박순자 할머니(79·가명)는 서울 영등포에 9㎡ 남짓한 지하 단칸방에서 산다. 50년 전 가족들과 서울에 자리 잡은 뒤 평생을 일궈 마련한 유일한 보금자리다. 이 방에는 화장실도 에어컨도 없다.
여름 더위는 선풍기 하나로 버틴다. 겨울 추위는 석유 보일러와 전기장판으로 막는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1인용 전기장판을 쓴다. 한겨울에는 2인용 전기장판을 꺼낸다. 전기요금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박 할머니에게는 평일과 주말 구분이 없다. 24시간 일상이 똑같다. 오전 7시께 일어나 동네 한 바퀴 돌고, 아침 겸 점심밥을 챙겨 먹는다. 누워 쉬다가 낮잠을 잔 뒤 방 청소나 빨래 같은 집안일을 한다. 이른 저녁을 먹고 TV 드라마를 보다 밤에 다시 산책을 나간다. 자정 무렵까지 다시 TV를 보다 잠든다. 박 할머니는 이 쪽방에서만 40년을 살았다. 자식 둘도 여기서 키웠다.“10년 전에 남편 잃고, 뇌질환으로 고생하던 딸은 6년 전에 죽었어. 하나 남은 아들이 결혼해서 빨리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어. 그게 유일한 소원이지.”
지금도 먼저 떠나보낸 남편과 딸 생각에 가끔 불면증이 찾아온다. 아직 미혼인 50대 아들은 변변한 직업 없이 객지를 떠돈다.
할머니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남매 키울 때다. 박 할머니는 자식들 어린 시절 얘기를 하면서 '행복'이라는 단어를 여섯 번이나 반복했다. 오래 전부터 알던 할머니들과 한 달에 한 번 꼴로 점심밥을 먹는 게 유일한 사회활동이다. 이외에 왕래하는 이웃은 없다.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다. 가끔씩은 지루하다 못해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지금처럼 몸 안 아프고 사는 게 좋지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아. 자다가 편안하게 갔으면 좋겠어.”
당뇨와 골다공증으로 한 달 약값으로만 30만원을 쓴다. 약값 외에 들어가는 돈은 식비와 공과금이 대부분이다. 지난 9월부터 25만원으로 인상된 기초노령연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이 유일한 생활비다. 박 할머니는 “내 장례 치를 비용 정도는 마련해뒀다”며 “하늘나라 가면서 자식에게까지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종로 탑골공원에서 만난 정강철 할아버지(90·가명)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게 한(恨)이다. 어릴 적부터 부모 따라 농사를 지었다. 나이 서른 넘어 부인과 6남매를 데리고 상경했다. 자기 땅 한 평 없이 시골에서 농사일 해가지고는 자식들 먹여살리기가 어렵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사판을 전전했다. 돈 벌려고 닥치는 대로 일했다. 나이 일흔이 다 돼 서울 강남의 작은 빌딩 경비원으로 취직해 10년간 일했다. 매달 80여만원씩 월급을 받아 아내와 살았다. 70년을 함께 산 아내는 두 달 전 요양원에 들어갔다. 치매 증상이 심해져 더 같이 살기 어려웠다. 할아버지는 딸 집에서 산다. 자신과 아내 몫으로 나오는 기초연금 40만원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연금 30만원이 유일한 생활비다. 평생을 일했지만 젊을 때나 지금이나 항상 돈에 쪼들리고 궁핍하다.
정 할아버지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다 느닷없이 “솔직히 말해도 되느냐”고 했다. 할아버지는 “더 살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여러 번 생각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순자 할머니나 정강철 할아버지는 그나마 건강한 축에 든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최현주(46·가명)씨 어머니는 15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다. 처음에는 경증으로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점점 상태가 나빠져 7년 전 요양원으로 모셨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간병은 미혼인 막내딸 현주씨가 맡았다. 20년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재산 대부분을 물려 받은 오빠는 결국에는 ‘나 몰라라’했다. 언니가 둘이나 있지만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자기 자식들 키우느라 엄마를 돌보지 못했다. 형제들끼리도 원망이 쌓였다. 사이가 벌어져 이제는 왕래도 않게 됐다.
현주씨 혼자 두어 달에 한 번씩 엄마를 찾는다. 그나마 명절쯤에는 언니들이 찾아온다. 현주씨는 지금도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눈물을 훔친다.
“이젠 저도 제대로 못 알아볼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지만 몸은 건강해요. 어쩔 땐 그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생각을 하는 저를 보며 스스로 놀라지만 이젠 저도 많이 지쳤나봐요.” 현주씨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끝을 흐렸다. “우리 엄마는 그곳에서 화석처럼 늙으며, 죽을 날을 기다린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1960년 만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전체 인구의 2.9%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14%를 넘어섰다. 노인들은 하루 대부분을 TV를 보거나 라디오 들으면서 지낸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노인들의 하루 평균 TV 시청, 라디오 청취 시간은 3.8시간이다. 5시간 이상 TV시청·청취자 비율은 31.8%로 가장 높았다.
활동량이 적은 노인이 건강할 리 없다. 노인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의 39.7%는 평소 자신의 건강상태가 나쁘다고 판단했다. 당뇨와 골다공증을 앓고 있는 박순자 할머니처럼 의사의 진단을 받은 만성질병이 있다고 응답한 노인은 89.5%에 달했다.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복합이환자)도 73%나 됐다. 평균 만성질환 수는 2.7개였다.
중앙치매센터가 올해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현황 2017’에 따르면 국내 노인인구 678만명(2016년 기준) 중 추정 치매환자는 66만명, 이 중 치매진단을 받은 환자(치매상병자)는 59만6000명에 이른다.
세대간 대립구도가 생겨나면서 노인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리는 벌레같은 노인)’ ‘노인충(노인과 벌레 충(蟲)자를 합한 말)’ ‘연금충(기초노령연금 등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과 벌레를 합한 말)’ 등 노인을 비하하는 혐오 표현도 넘쳐난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70대 늙은 시인 이적요 교수(박해일 분)가 말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이 취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특별취재팀(김민진 차장 이관주 김민영 송승윤 유병돈 이승진 기자) 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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