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종화 PD] 어설픈 재능으로는 성공하지 못하는 유튜브에서 구독자 220만 명을 끌어모은 일본의 스타 유튜버가 화제다. 220만은 국내 굴지의 유튜버인 ‘이사배’나 ‘대도서관’을 뛰어넘는 구독자 수다. 관련 상품과 피규어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업로드하는 동영상마다 세계 각국의 자막이 달린다. 얼마 전에는 공식 카카오톡 이모티콘까지 출시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튜버가 실체 없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프로젝트 AI라는 정체불명의 회사에 의해 만들어진 이 3D 캐릭터는 자신을 스스로 A.I(인공지능)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름도 A.I에서 따온 ‘아이’다. 이 기묘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즈나 아이’. 나이도 성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버추얼 유튜버’다. 여타 평범한 유튜버들처럼 게임 방송을 하고, 이야기하며, 때로는 고민 상담도 해주는 탓에 시청자들은 키즈나 아이를 실존하는 인물처럼 대하고 팬임을 자처한다.
흔히 가상의 인물이라고 하면 조악한 그래픽과 어설픈 표정을 떠올리기 쉽지만, 키즈나 아이는 실제 인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고가의 모션 캡쳐 장비를 이용해 사람의 동작과 표정을 실시간 3D 모델링한다. 자연스러운 상체 움직임과 표정은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정도다. ‘가챠’로 불리는 온라인 게임의 아이템 뽑기를 하며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불어난 구독자 수를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시청자와의 소통과 리액션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유튜버의 자질을 완벽히 갖춘 셈이다.
표정과 동작 등이 키즈나 아이 캐릭터의 구성 요소라면 캐릭터를 완성하는 것은 더빙을 맡은 성우의 목소리 연기다. 시청자의 관심이 캐릭터와 성우로 양분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정체는 철저히 베일에 묻혀 있지만, 가끔 키즈나 아이를 통해 개인사를 녹여 내거나 취향을 공개하는 등 미묘한 경계선에서 줄타기 하며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 영상이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제목과 내용 모두 한글로 번역될 만큼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자랑하고 있다.
개인 방송 시장은 레드 오션이다. 동영상을 찍어 편집해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것이 더는 낯설지 않다. 많은 사람이 뛰어든 결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유튜버로서의 성공이 담보되지 않는 시장이 됐다. 이런 와중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의 인물이 유튜브를 한다는 콘셉트가 대중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인공 지능이라는 콘셉트를 살려 ‘나의 체중은 46kg이지만 본체의 무게는 1억GB 이상이다’ ‘(데이터로만 이루어진) 나의 새하얀 집은 너무 허전하다’ 등의 농담을 하는 등 제3의 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특징이다.
모션 캡쳐 장비 등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찮게 들어가기에 상품 홍보나 외부 활동 등의 수입을 목표로 한 기업 단위의 버추얼 유튜버 운영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대표 버추얼 유튜버는 모바일 게임 ‘에픽세븐’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아’. 채널 개설 2개월 만에 5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홍보를 위한 기업형 버추얼 유튜버라는 점에서 처음에는 비난을 받았으나 현재는 일상과 유머 영상을 올리는 등 소탈한 모습에 집중하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방송사고로 인한 정체 공개 후 갑론을박 벌어지기도
최근 버추얼 유튜버 ‘노라캣’의 생방송에서는 가히 참사라고 할 만한 방송 사고가 벌어졌다. 하얀 머리카락에 고양이 귀가 붙어 있는 미소녀 버추얼 유튜버의 본체(?)가 공개된 것.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던 사람은 건장한 남성이었다. 깜짝 놀란 남성은 황급히 화면을 전환했지만, 해당 장면은 그대로 녹화되어 인터넷에 퍼졌고 팬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처럼 버추얼 유튜버라는 개념은 어디까지나 가상 인물이기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한 논란도 항상 따라붙는다. 버추얼 유튜버의 팬은 과연 해당 캐릭터의 팬인 것인지, 캐릭터의 동작과 목소리를 연기하는 화면 뒤 사람의 팬인 것인지도 논란거리다. 가상의 인물이라는 콘셉트 하에 콘텐츠가 전개되기 때문에 캐릭터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이 대다수지만, 캐릭터와 별개로 성우의 팬을 자처하는 경우도 있어 팬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버추얼 유튜버, 1인 미디어 시장에 새 시대 열 수 있을까
여러 구설에도 불구하고 버추얼 유튜버 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키즈나 아이의 성공을 필두로 현재 일본에는 4000여 명의 버추얼 유튜버가 탄생했다. 최근 일본정부관광국은 키즈나 아이를 홍보대사로 임명했고, 전세계 구독자 1위를 자랑하는 유튜버 ‘퓨디파이’도 이슈를 만들기 위해 합동 방송을 진행하는 등 키즈나 아이를 위시한 버추얼 유튜버의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포화 상태를 맞이했다고 평가받는 유튜브 시장에 버추얼 유튜버가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종화 PD fina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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