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사전] 클래시페이크 - 진짜를 이기는 ‘가짜’ 전성시대

사진 = 조선통신사 행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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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정유재란이 끝나고 1603년 도쿠가와 막부를 연 이에야스는 조선에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조선왕조는 왕래가 잦았던 쓰시마 번을 통해 막부에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첫째는 쇼군의 국서를 먼저 보낼 것, 둘째는 쇼군 호칭을 일본 국왕으로 할 것, 셋째는 왕릉 도굴범과 피랍 조선인을 송환할 것이었다. 당시 무사가 세운 일본 막부는 조선의 요청을 수용할 수 없었고, 이에 쓰시마 번은 막부의 묵인 하에 내용을 일부 수정해 가짜 국서를 만들고 가짜 도굴범을 세워 조선에 보냈다. 조선 왕조 역시 국서와 도굴범이 가짜임을 알았으나, 전쟁 종식 후 피해 복구, 북방 대비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명분은 실리를 이길 수 없었다. 조선은 이를 수용했고 1607년 첫 통신사를 파견해 양국 간 평화적 외교 시대를 열었다.

클래시 페이크(Classy fake)는 고급(classy)과 가짜(fake)를 붙여 만든 단어로, 진짜를 압도하는 가짜 상품, 그런 가짜를 소비하는 추세를 지칭한다. 패션계를 중심으로 3D 프린터로 만든 인조 가죽, 인조 모피 등이 오히려 진짜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며 동물 보호 메시지를 확산시켰는가 하면, 채식주의 열풍으로 무섭게 성장한 식물성 고기와 식물성 달걀 시장은 진짜를 압도하는 가짜 전성시대를 방증하고 있다. 최근엔 이런 가짜 상품을 소비하는 사람을 페이크슈머(Fakesumer) 라고 부르는데, 진짜보다 가치 있는 가짜, 관성에 젖은 진짜를 뛰어넘는 신선한 가짜에 열광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원전의 숭고함을 일컫는 아우라(Aura)가 실종된 시대, 진짜를 이기는 가짜는 복제 너머의 새로운 창작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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