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남자들도 ‘갑옷’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이제는 남성들도 정당한 대우를 원해요.”
경기 시흥시의 한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는 진모(31) 대리는 그동안 막내 직원과 나눠서 하던 사무용품 운반, 정수기 물통 교체 등의 업무에서 완전히 해방됐다. 남자 직원들이 도맡았던 잡무들을 여직원들과 분담하기로 해서다. 최근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의 여파로 여성들의 ‘탈(脫) 코르셋’ 운동이 이어지면서 회사 내부적으로도 보이지 않는 남녀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진 대리는 “인터넷 댓글에서나 보던 일이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실현되고 있어 기분이 묘하다”면서도 “그동안 업무 외적인 일로 낭비했던 시간들을 아낄 수 있어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고 말했다.이처럼 사회적으로 강요된 여성성에서 벗어난다는 취지의 탈 코르셋 운동에 맞서 남성들 사이에서 ‘탈 갑옷’ 바람이 불고 있다. 코르셋과 반대로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남성성을 의미하는 ‘갑옷’을 벗어버리자는 이 운동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웹툰 ‘남자는 갑옷을 입는다’에서 차용된 표현이다. 해당 웹툰은 남성들도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우리 사회의 피해자였음을 주장하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지금까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남성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남자 화장실에 마음대로 들어오는 여자 청소부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은 오로지 남자 직원의 몫이었던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이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그동안 사회적 차별을 받아 왔다면서 여성들의 탈 코르셋 운동에 강한 반감을 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탈 코르셋 운동의 반대 급부로 피어난 탈 갑옷 운동이 결과적으로는 성대결을 조장하는 양상으로 흐를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를 방증하듯 이미 여러 여성 전용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웹툰(남자는 갑옷을 입는다)을 조롱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탈 코르셋’은 물론 ‘탈 갑옷’ 운동 역시 일시적인 사회 현상으로 보고 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투 운동을 기점으로 새로운 페미니즘이 몰려 왔다”면서 “탈 코르셋 운동 역시 그 일환이며, 이 운동이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자 일종의 반작용 형태로 탈 갑옷 운동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송 교수는 “두 현상 모두 온라인 상에서 극히 일부가 주장하는 내용들로 사회적 편견에 대한 하나의 히스테리로 보면 된다”면서 “오프라인 상에서 주위를 살펴보면 실제로 저 같은 사상을 주장하는 이를 찾기 힘든 만큼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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