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5G시대에도 보편요금제 재탕하지 않으려면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 다음 달이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가계통신비 인하안을 발표한 지 1년이 된다. 이 기간 동안 정부와 이동통신사는 좁혀지지 않는 대립각을 형성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월 3만원 요금제에서 1만1000원을 인하해, 국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요금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통사들은 정부가 요금제를 인가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요금 설정권한까지 갖겠다는 반시장적 정책이라며 반박하고 있다.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대법원까지 나섰다. 참여연대가 낸 이통사 요금산정자료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국회는 아예 이통사의 요금제 원가정보공개법을 발의하고 나선 상태다.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이통사들은 "차라리 이통사를 국영화 하는 편이 낫겠다"는 자조 섞인 토로를 늘어놓고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이통사의 상품 기획까지 하겠다는 상황이니 그야말로 '노답(답이 없다)'이라는 것이다.

이통사가 사면초가에 처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자승자박이라는 비판도 설득력을 가진다. 애초부터 이동통신 산업이라는 게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고, 기존 사업자들은 정부의 진입장벽 덕에 큰 성장을 거둬왔기 때문이다. 이에 이통 3사는 규제의 과실만 따먹고 사회적 책무를 등한시하다가 이런 꼴을 당하게 됐다는 것이다.정부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이통사가 지금이라도 보편요금제와 같이, 소비자의 통신 부담을 줄여줄 수 있는 실질적이며 효과적인 요금제를 내놓는다면 요금제 강제와 같은 정책을 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통사들은 통신비 부담을 직접적으로 줄여주는 방식이 아닌, 혜택을 늘려주는 방법으로 반응했다. SK텔레콤이 연내 혁신적 요금제를 내놓겠다고 발표하긴 했지만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 명분을 제거할 만한 획기적 방안이 될지도 미지수다.

정부에게도 아쉬운 점은 있다. 이통사에게 사회적 책무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 문제다. 다음 달 5G 주파수가 공급되면 내년 3월부터 5G 서비스가 시작된다. 이는 국가적 역점사업이라는 점에서 이통사의 발목을 잡기에 시기적으로 적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정부가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5G 요금제 설정에 선제적으로 나서 이통사와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의 간섭이 없는 시장에서 이통사들이 자사 이익에 충실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든 상태에서, 새 정부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등장하는 느닷없는 규제강화는 받아들이는 쪽에게 난감함만 주기 십상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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