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관련해 우리가 실리를 취했다고 밝히고 있는 가운데 이번 협상이 생각보다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율 이면합의가 사실이라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주체하에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우리나라가 실리를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에겐 명분만 주고 한국은 실리를 취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철강 25% 관세를 피하고자 많은 대가를 지불했다"며 "철강관세를 완전히 약속받은 것도 아니고, 74% 물량까지만 무관세를 약속받은 것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과 어긋나는 '자율적 수출규제'에 합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픽업트럭 관세 25%를 2021년에 무관세로 하는 합의는 그 어떤 국가도 받아내지 못한 합의였는데 이를 20년 후로 연장했다면 수출기회도 완전히 포기한 것"이라며 "정부가 일자리 창출 기회를 걷어찼다"고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한미 FTA 개정협상을 타결해야 하고 철강관세 부과를 면제받아야 하는 상황이 긴박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통상정책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협상에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철강관세 협의에 대해 "적용기한이 없이 무기한으로 적용되고 수익성이 높은 유정용 강관은 51% 쿼터밖에 안 되며 쿼터외 물량을 인정하는 '저율할당관세(TRQ)'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이번에 철강에 대해 쿼터로 수출을 막고 앞으로 자동차, 가전, 디스플레이, 반도체로 이어지면 한미 FTA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환율 이면합의 논란과 관련해서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85년 플라자합의 때문"이라며 "(환율 합의는) FTA관세철폐보다 몇 배 더 큰 파급과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도 "한국 협상팀이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한미 FTA의 폐기는 피해야 한다'는 협상목표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협상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며 "트럼프 정부가 한미간 안보군사협력을 상업적 거래대상으로 간주하는 협상프레임에 대해 한국정부 역시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8년 미국발 국제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필두로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시행한 양적완화정책 역시 인위적 정책개입이자 환율 조작으로 볼 수 있다며 "가장 심각한 환율조작국은 미국, 일본, EU 순이라는 명백한 사실에 대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며 적극적 논리적 대응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도 한미 환율협상이 원화가치 절상으로 이어지며 수출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따르면 양국은 경쟁적 평가절하와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데 합의했으며, 우리 정부는 개입 내역을 공개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 중이다.
오 회장은 "환율정책을 포기한다는 것은 소규모개방경제에도 불구하고 재정·통화정책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라며 "수출이 증가하고 불황형 흑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원화가치가 절상되면서 다른 수출은 초토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규모 개방경제국의 금융위기는 언제나 통화가치 고평가에서 시작된다"며 "통화가치가 고평가되면
수출이 감소하고 제조업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금융부실이 증가,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