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용 작가 [사진=학고재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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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갤러리 가장 깊숙한 곳에 활자작품 180여점이 공간 전체를 메운다. 작품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은은하고 질박한 색감은 동양적 아름다움을 뽐낸다. 시공간을 넘어 옛 선조들의 고택(故宅)에 온 듯 차분해진다. 한눈에 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작가의 혼(魂)이 느껴진다.
이진용 작가(56)는 일반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노동력을 쏟아 붓는다. 작품 하나하나에 반복적 행위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마치 수도승 생활과 같다. 잠은 매일 3시간씩만 자고, 다섯 군데 작업실을 오가며 진행하는 탓에 매우 고되다. 그럼에도 작가는 정신적 피로를 즐기고 있다. 지금이 작가로서 절정기라고 생각하며, 감각을 끌어내는 데에만 집중한다. 30년 넘도록 수많은 골동품과 차(茶)를 수집한 작가는 수집품 중 목판활자와 열쇠, 화석, 책 등을 작품 속 소재로 사용한다.
전시장 전경 [사진=학고재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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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활자(Type)’ 시리즈는 그 제작과정이 길고 번거롭다. 활자의 배열, 본을 뜨는 과정, 굳히는 과정, 수성 에폭시를 바르고 말리는 과정, 석분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는 과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닦고 광을 내는 과정까지 2~3개월이 걸린다. 수없이 쌓이고 쌓인 시간과 노력의 산물이다. 작가는 “항상 다른 비율로 흙과 재료(안료, 염료 등)를 섞기 때문에 작품의 색이 저마다 다르다. 굳힌 판 위에 수성 에폭시를 부은 뒤 말리는데, 처음에는 에폭시가 평평하게 퍼지지만, 흙판이 에폭시를 머금어 서서히 스며든다. 20일가량 지나면 판 위에 석분을 뿌리고 물로 씻어내기를 반복한다. 이때 석분을 완전히 씻어내지 않고 살짝 헹군다.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먼지가 쌓인 듯한 질감을 얻는다. 골동품 분위기가 나면 마무리로 손수 광을 낸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들을 조각 그림(Sculpture painting)이라고 명한다. 그는 “옛 이집트인들이 상형문자를 돌에 새기듯, 중국인들이 갑골문자를 거북껍데기나 소뼈에 새기듯, 한자를 하나하나 새겨 붙이고 그 위에 물감을 입힌다. 손으로 더듬어 오래된 세월이 드러날 때까지 매만진다. 내 작업은 물방울로 바위에 구멍 뚫기다. 물방울은 미약하지만, 무한 반복해 떨어져 끝내는 바위에 구멍을 낸다”고 했다.
Continuum, 2017, Mixed media, 91×80㎝(4 pieces·왼쪽)/ Hardbacks, 2017, Oil on panel, 110×80㎝(4 pieces)[사진=학고재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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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Hardbacks) 시리즈도 반복과 시간으로 완성된다. 작품은 책의 쪽들이 한 장씩 수직 또는 수평으로 그려져 겹겹이 쌓여있다. 기존에는 고(古)서적의 모습을 상상해 무질서하게 쌓아둔 모습이었지만, 최근에는 책 옆면을 질서있게 그렸다. 또한 캔버스에서 벗어났다. ‘조각 그림’이란 표현처럼 패널(panel)에 작업했다. 패널 위에 세필붓으로 물감을 수없이 반복해 칠했다. 재료의 변화로 더욱 뛰어난 질감을 표현했다.
컨티뉴엄(Continuum) 시리즈는 ‘에도 시대 부엉이 향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모형처럼 작가의 수집품이 작품 주제로 등장한다. 해당 시리즈는 기존 활자 작품과 달리 실제 땅에 묻어 숙성한 뒤, 꺼내어 흙을 털고 다시 묻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시간을 ‘셀프 화석’으로 구현했다.
30일 문을 연 이진용 개인전 ‘컨티뉴엄’은 한 달간 학고재 갤러리 본관에서 열린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3년간 준비했다. 2014년부터 작업한 활자와 책 시리즈 신작을 선보인다. 최근 시작한 컨티뉴엄 시리즈는 처음 공개한다. 작품은 총 233점. 이번 개인전은 영국 폰톤 갤러리(총 16점)에서 동시에 열린다.
Hardbacks, 2017, Oil on panel, 120×80㎝(5 pieces·위)/ Continuum, 2017, Mixed media, 91×80㎝(3 pieces)[사진=학고재 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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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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