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대섭 기자] 재벌개혁을 취지로 20대 국회가 추진 중인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에 중소중견기업들이 반대 성명서를 냈다. 재벌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던 중소중견기업들이 오히려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확보, 소액주주 보호 등 개정안의 목적과는 달리 과도한 규제로 심각한 부작용 발생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20대 국회 출범 이후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이달 임시국회 처리를 논의 중이다. 하지만 중소중견업계는 이번 상법개정안이 오히려 중소중견기업들의 경영을 어렵게 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로 규제대상으로 하는 상장회사 중 대기업은 14%에 불과하고 중소중견기업이 86%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장회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자본시장 활성화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16일 기업지배구조 관련 상법 개정안에 대한 경제단체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실과 법사위 전문위원실 등을 방문하고 경제계의 공동의견서를 전달했다.
상법 개정안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사외이사 선임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 의무화', '인적분할 시 자사주 활용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이들 협회는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기업에 부담만 주고 실효성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집중투표제도란 2인 이상 이사 선임 시 1주 마다 선임할 이사의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소수주주 추천 이사 후보 선임을 용이하게 하는 투표방식이다. 현재는 소수주주 요청시 집중투표를 실시할 수 있지만 정관으로 배제 가능하다. 그러나 개정안은 '정관으로 배제 불가'하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외국계 투기자본이 악용하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소액주주들이 의결권을 모아 집단적 이사선임을 할 가능성은 낮으며 오히려 외국계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의 경영권 간섭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중투표를 통해 소액주주 추천 이사보다 최대주주와 2, 3대 주주 추천 이사등으로 이사회가 구성될 가능성이 농후하며 이와 같이 이사회가 구성되는 경우 이사회의 당파적 운영과 이로 인한 의사 결정의 지연, 기업 경영 효율성 저하 초래, 경영정보 유출 위험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의 경우 집중투표제도의 부작용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부터 의무화에서 자율화로 전환한 상태다.
개정안의 사외이사 선임제한 내용도 문제다. 주요 내용은 사외이사 결격요건 확대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구성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배제, 우리사주조합과 소액주주가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후보추천(각1인) 및 의무선임이다.
이는 소액주주 및 우리사주, 근로자대표에게 사외이사 선임권을 부여하는 것은 주주자본주의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사외이사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요건은 이미 충분한 상황에서 결격요건 확대로 인한 사외이사 전문성 확보의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에 사외이사후보 추천권을 부여하는 것도 주주평등원칙에 위배되고 다른 주주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중견기업연합회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으로 투기성 외국자본에 경영권을 위협 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란 이사로 선임 후 감사위원으로 선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바로 감사위원으로 선임토록해 최대주주 등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식이다.
이번 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도를 통해 모회사의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협회는 다중대표소송제도에 대해 독립적인 법인격 부인, 자회사 주주의 권리 침해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제기했다.
전자투표제도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의결권 행사수단 다양화에는 공감하지만 주주권 행사활성화 보다 추가적인 상장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전자투표제도란 주주총회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이와 함께 자기주식 취득처분과 관련한 인적분할 시 자사주 활용 제한 개정안에 대해서는 경영권방어수단의 도입과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인적분할 시 자사주 활용 제한 개정안은 분할 시 분할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한 신주 배정을 금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장회사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상장기피 요인으로 작용해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이는 우량 중소중견기업이 자본시장을 통해 건전한 성장을 이루고 그 성장 과실을 투자자들과 나누며 일자리 창출을 위한 재투자로 연결하는 역동성 있는 선순환 경제구조 구축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