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외부감사인 징계, 교각살우를 경계해야

 

황문호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황문호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교수

원본보기 아이콘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회계분식사건을 주도한 회사 경영진에 대해서 법원의 1심 유죄판결이 내려진 가운데 외부감사인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절차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는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여러 차례의 제도적 변화를 꾀한 바 있다. 2003년부터 도입된 회계제도개혁법을 비롯하여 2011년부터는 국제회계기준을 새로운 회계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나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의 회계투명성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보다 재무보고에 대한 기업과 경영자의 안일한 인식, 즉 회계분식을 어느 정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 기인한다. 더불어 경영자의 회계부정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하는 외부감사인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따라서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회계분식 사건에 부실한 회계감사가 연루되어 있다면 이를 강력히 제재함으로써 회계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우리나라의 감사품질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다만 부실감사를 적발하고 징계하는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것은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이를 수행하는 공인회계사간에 감사품질에 대한 역할과 책임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일반적으로 제조기업은 표준화된 공정과 설비를 통해 생산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전문화된 인적용역을 제공하는 회계법인이 개별 업무단위의 감사품질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회계감사는 소수의 공인회계사들이 팀을 이루어 수행하는 독립적인 업무인 한편 회계법인에 소속된 공인회계사들의 전문가적 역량이나 윤리적 가치관, 그리고 위험에 대한 태도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회계법인은 내부적인 품질관리규정을 수립하고 구성원에 대해 지속적인 교육을 수행하며, 규정위반자에 대한 엄정한 징계를 통해 법인 전체의 감사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방향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품질관리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한다 하더라고 소속회계사들이 전문가로서 수행하는 업무과정을 모두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감사업무에서 품질문제가 발생한다면 담당회계사에게는 수행한 감사행위와 윤리적 태도부문에서, 회계법인에게는 품질관리제도의 운영부문에서 그 책임소재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회계법인이 최선을 다해 품질관리제도를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문제라면 원칙적으로 전문가 개인의 문제로 귀착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며, 담당회계사의 부실감사와 더불어 회계법인 차원의 방조나 묵인이 있었다면 응분의 책임을 함께 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관점에서 대우조선해양의 외부감사를 맡았던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책임범위를 다시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속 공인회계사들이 전문가로서 수행한 감사업무에 문제점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이를 그대로 회계법인 차원의 의사결정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회계법인의 책임은 관리자로서의 의무수행 관점에서 규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회계법인 차원의 품질관리가 부실하게 이루어졌다면 강력한 징계조치가 내려지는 것이 마땅하겠으나, 회계법인 차원의 품질관리가 충실히 수행되었고 해당 분식사건에 조직적인 관여가 없었다면 회계법인 전체를 업무정지의 대상으로 조치하는 것은 과중한 징계라고 할 것이다.

평판과 명성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회계업계의 특성상 업무정지 처분은 회계법인의 해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의 존속이 불투명해지면 2300여명 임직원의 일자리 상실, 1400여개 피감사 기업들의 감사인 교체부담,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소액주주들의 잠재적 보상가능성 하락 등 많은 사회적 비용과 선의의 피해자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법과 제도는 참여자로 하여금 관련규정 준수를 요구하고 잘못을 징벌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과 제도가 합리적으로 운영되고 시대에 맞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준수와 징벌의 합리적 균형이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징벌은 잘못을 교정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계도의 차원에서 실시되는 대응책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사태로 비롯된 외부감사인의 책임소재 규명과 징계 조치는 전문가 조직의 속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칫 소의 못난 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가 있다.

황문호 교수 (경희대 회계세무학과)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