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미국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선수들의 트레이닝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 중 인상 깊은 발표가 있었다. 신시내티 레즈의 스포츠과학팀 디렉터인 찰스 레든 박사는 선발투수 등판 뒤 5일 동안의 '루틴'을 어떻게 치르는지 설명했다. 루틴(routine)이란 규칙적으로 하는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의미한다.
스포츠 루틴이란 스포츠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고유한 운동 프로그램을 일정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신시내티 레즈의 투수들은 경기 등판 날에는 어깨 관절의 가동성을 확보하고 견갑골의 운동성을 회복하는 운동을 한다. 둘째 날은 먼 거리 투구, 하체 근력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한다. 셋째 날은 불펜 투구와 견갑골 안정화 운동, 넷째 날은 자발적인 투구와 순발력 운동을 한다. 마지막 다섯 째 날은 가볍게 투구하며 휴식을 갖는다. 물론 이러한 루틴의 상세 운동프로그램은 투구의 경기력 향상과 부상 방지를 위해 과학적으로 철저히 검증된 내용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인 호날두 역시 술, 담배를 전혀 안 하며 매일 고강도의 운동을 한다고 한다. 요일별로 웨이트트레이닝과 유산소운동으로 구성된 루틴을 하루도 빠짐없이 철저하게 지키며 시합에 앞서 자신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만드는 노력을 십년 넘게 꾸준히 하고 있다.
며칠 전 사석에서 전직 프로야구 투수에게 들은 얘기인데, 이러한 루틴을 어기고 등판을 요구 받았을 경우, 투수들은 매우 난감해하며 꺼린다고 한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루틴이 깨져 장기적인 레이스 내내 경기력 저하로 고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정기적으로 출전하는 경기를 준비하기 위한 5~6일 단위의 루틴도 있지만, 경기 당일 시합 전에 하는 루틴도 있다. 22세에 골프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와 US 오픈을 연속으로 우승하며 타이거 우즈의 후계자로 불리는 조던 스피스의 컴퓨터와 같은 퍼팅의 비결이 라운딩 전 하는 워밍업 루틴인 '75분 법칙’에 있다고 소개된 적이 있다. 조던 스피스는 티오프 75분 전이면 항상 연습 그린에 나타나 그 만의 방식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즉, 75분을 15분-35분-10분-15분으로 나누어 쓰는데, 처음과 마지막 15분은 퍼팅 연습을 한다. 연습 그린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공이 홀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주입하기 위해 1.2~2m 거리의 짧은 퍼트를 반복해서 연습한다. 그 다음 드라이빙 레인지로 이동해 35분간 샷 연습을 한다. 순서는 웨지-아이언-우드 순으로 치고 마지막에 드라이버를 잡는다. 클럽당 연습횟수는 10회 내외인데, 짧은 클럽을 많이 연습하고 긴 클럽은 서너번의 스윙으로 끝낸다. 티타임 25분 전에는 치핑 그린으로 이동해 칩샷과 벙커샷을 8~9회 연습하고, 마지막 15분을 남기고 다시 퍼팅 그린으로 돌아가 다양한 거리의 퍼트를 20회 이상 연습한 후, 첫홀인 티잉그라운드로 올라간다.
이러한 스포츠 루틴은 조던 스피스뿐만 아니라 모든 골프 선수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상 일정하게 하고 있으며, 골프 선수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선수들이 각자의 종목에 맞는, 그리고 자신에 최적화된 방식의 루틴으로 경기를 준비한다. 대부분 운동선수 출신들은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시간 관리에 철저하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기간 몸에 밴 루틴 때문 아닐까?
이기광 국민대 체육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