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재의 만인보] "독일식 노사관계 모델에서 한국의 미래를 찾자"

노사관계 혁신 통해 한국사회 개혁 모색하는 하성식씨

지금 촛불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시민들의 함성은 대통령 탄핵을 넘어서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와 개혁을 외치고 있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경제·사회적 개혁에 대한 노도와 같은 요구다. 그 같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구동하는 중요한 한 축이 노사관계의 변화라고 믿는 하성식씨(57·사진)는 ‘왜 우리는 독일로부터 배워야 하는가’라는 문제제기를 통해 그에 관한 사회적 토론을 촉발시키고자 한다.


많은 이들이 일치하는 것이지만 한국 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에 있다고 보는 그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즉 ‘사회경제적 변화를 통한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한 한 모델로 독일의 노사관계를 제시하고 있다.
“왜 독일이냐고요? 유럽 경제가 최근 수년간 침체에 허덕이고 있지만 독일만은 1990년대 초반과 2000년대 초중반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미 2010년 이후에는 유로존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탄탄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독일경제의 안정과 순항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노사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인데,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우리를 변화시킬 그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소중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깊이 있게’라는 것이다. 그 ‘깊이’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기본전제들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모든 인간(종업원)은 이기적이다.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없다.’‘이타심, 공정성, 책임성, 공감, 자발성, 이런 것들은 인간의 본성에 없다.’‘이윤만이 기업활동의 목적이다.’‘경쟁만이 효율을 보장한다.’그는 이 같은 전제들이 과연 타당한가, 라는 의문과 해답을 독일의 노사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 모델의 주요 특징으로 ‘사회적 시장경제’. 즉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사회적 균형과 질서를 중시하는 체제, 공동선의 원리, 우리나라와 미국 기업의 일원적 이사회와 다른 이원적 이사회, 노사 공동결정제도 등을 꼽았다.

독일 만하임대에서 경영학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내내 독일 내 국내외 기업과 컨설팅 회사에서 기획과 인사 분야 업무를 맡아 왔다. 2010년에 귀국한 그는 한국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을 한 가지 했는데, 바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이다. 그는 광주광역시 사회통합추진단의 정책TF팀장으로서 이 모델의 실행계획을 직접 설계했다. 그는 이제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넘어 ‘한국형 일자리 모델’을 연구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집필과 강연에 힘을 쏟고 있는 그가 책을 쓰는 자세는 ‘실사구시’라는 말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독일의 노동조합에 대해 서술하면서 노동조합의 역사니 발전과정이니 하는 사항은 다루지 않은 대신 단도직입으로 독일의 노사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내용들을 군더더기없이 짧게, 그러나 중요한 사항을 빠트리지 않으면서 서술하려고 합니다.”

오랜 기업현장의 체험에다 근본적인 문제의식, 실사구시적인 태도는 한국사회의 현재의 문제해결과 미래 설계, 공존과 공영의 길을 모색하는 데 필요한 덕목들인 듯하다. 그는 “이해는 관용을 낳는다”고 말한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으며 선이고, 상대방의 주장은 그르고 악이라는 일방적인 자세가 아니라 먼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입니다.”일자리 창출에 관한 나름의 정책 대안을 담은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꾸준한 작업들은 우리 사회에서 특히 많이 나타나고 있는 분노와 불안의 정서에 대한 깊은 염려에서 나오는 것이다. “광범위한 분노와 불안은 지나친 능력주의가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있는 것과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는 결과가 운에도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보상의 격차에 일정한 한계를 부여하는 사전적 제약과 세금의 누진성을 대폭 강화하는 사후적 제약이 필요합니다.” 그에게서 연구자 이전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시민’의 면모가 보이는 듯하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나온 ‘왜 또 독일인가?’라는 저서에서 스스로를 ‘천학비재(淺學非才)’라고 했다. ‘천학’을 자처하는 그 겸허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그가 우리 사회에 기여할 바가 결코 얕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