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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손선희 기자] "아기는 언제 가질 생각이야?"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근무하는 A대리(30대 초반·여성·기혼)는 최근 인사고과와 관련해 부서장과의 면담에 불려가 다짜고짜 이 같은 질문을 받았다. 노골적으로 임신 계획을 물어와 당황한 A대리는 "글쎄요…"라고 얼버무리며 민망함에 애써 면담 주제를 바꾸려 했지만 상사의 질문은 꼬치꼬치 이어졌다.
A대리는 "인사고과와 임신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자녀 계획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왜 부모님도 아닌 당신한테 말해야 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고과가 걸린 자리여서 입도 떼지 못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중소기업에 근무하는 B사원(20대 후반·남성·기혼)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B사원은 지난해 같은 회사의 동료와 사내연애를 하다 결혼했는데,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식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곧바로 주위 상사들로부터 "너희 속도위반 했냐"며 웃음 섞인 놀림이 쏟아졌다.
B사원은 "아무리 부인해도 '처음엔 다 아니라고 한다'면서 믿지 않더라"며 "나는 그래도 참을 만 했는데, (결혼 상대자인) 여자친구 입장에서는 잠자리까지 물어보는 것 같아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각각 소속된) 양 부서에서 '신랑 데려와라' '각시한테 전화해봐'라고 강요해대는 탓에 회식 자리에까지 불려다녔다"며 "평소 친하지도 않던 상사까지 '누가 누구를 꼬셨다더라'는 둥 내 사생활을 술자리 안줏거리로 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직장 내에서 사생활 간섭으로 인해 갈등을 빚는 사례가 늘고 있다. 주로 젊은 세대 직장인이 결혼이나 임신, 연애 등 개인적인 일을 거침없이 묻는 직장상사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일이 많아 직장 내 세대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기도 한다.대기업 직원 C대리(30대 초반·여성·미혼)는 "최근 부서를 옮긴 뒤 새 부서장이 난데없이 '결혼을 안 해서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냐' '이미 늦었는데 뭘 더 천천히 하냐'고 묻더라"며 "부모님도 쉽게 묻지 않는 질문을 처음 만난 상사가 해 황당했다"고 전했다. 그는 "회사에서 '소통'을 강조하니까 신변잡기성 사생활 간섭을 소통으로 착각하는 상사가 많은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이미 수년 전 이혼한 대기업 직원 D차장(40대 중반·남성)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돌싱('돌아온 싱글'의 준말)인 사실을 회사에 밝혀야 했다. 부서에서 해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을 조사한 탓이다. D차장은 "결혼생활을 유지하던 때엔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 이혼하고 나니 후배가 결혼기념일을 물어올 때마다 곤혹스럽더라"며 "눈치 없는 한 후배가 결혼기념일을 끈질기게 물어봐서 홧김에 '나 이혼했다'고 말해버렸는데, 이후 동료들의 시선이 왠지 신경쓰인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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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이진경 디자이너 leejee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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