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는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어떤 전통의 유지 여부를 놓고 전체 학생투표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찬반 양측의 학생들은 다양한 매체로 주장을 펼쳤고, 거의 대부분의 재학생이 투표에 임할 만큼 뜨거운 대결이었습니다. 언론의 관심도 컸습니다. 10년 만의 재투표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결과는 의외로 싱거웠습니다. 75%가 넘는 학생들이 전통을 지키자는 쪽이었습다. 그 전통이란 시험날 공식적인 복장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장규칙은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흰색 셔츠나 블라우스에 흰색 또는 검정색 타이, 어두운 색 바지나 치마, 검정 신발, 그리고 짙은 색의 코트를 입으라는 것입니다. 학교 당국은 이 전통에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편하고 좀 시대착오적이 아니냐고 꾸준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번 투표를 통해 수백 년 된 전통을 지키겠다는 의견을 재확인했습니다.
이런 전통이 존재한다는 것도, 이런 전통을 지키자는 학생들의 움직임도 좀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대학에는 고루한 전통이 적지 않습니다. 졸업식 날 입는 불편한 복장도, 교수의 정년보장이라는 오래된 제도도, 흔히 라틴어로 장식된 대학의 교표도 빨리 변하는 세상에 잘 안 맞는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대학이 세상과 잘 안 맞아 돌아가는 전통은 매우 오래된 것입니다. 최초의 대학으로 불리는 볼로냐 대학이 만들어졌을 때, 유럽의 야심찬 학생들이 이 대학에 모여들면서 대학은 불법체류자로 몸살을 앓게 됩니다. 대학과 세속권력 간의 마찰이 불가피해지지요. 그 마찰을 조정한 결과가 바로 대학 내의 법적 자율권을 보장하는 문서인 '학자의 특권(Authentuca Habita)'입니다. 이런 권리보장이 대학의 학문적 자유를, 그리하여 결국 로마의 법률이 세계를 지배하도록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하지요. 하지만 '재수 없고 잘난 척하는' 학자들과 평범한 시민들 간의 갈등은 계속됩니다.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같은 영국 대학들에서 벌어진 학생과 시민들 사이의 폭력사태와 비슷한 일들이 유럽 전역에서 빈번히 일어나지요. 각국의 국왕들은 대학의 구성원들에게 지역사회와는 독립된 독특한 법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고 합니다.
근데 대학은 스스로 세상과 거리를 두려는 자세를 강력히 견지해왔습니다. 근대적인 대학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의 경우, 설립자 훔볼트는 '정치권력에 제약받지 않는 교수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대학의 가장 중요한 지향점이라고 선언했고 이후 많은 대학들이 이러한 정신을 자신의 설립이념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우리나라에서는 심지어 헌법에도 새겨져 있습니다. 헌법 31조4항은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장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최근 대학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특히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높은 청년실업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청년실업자를 양산하는 대학이 무슨 소용이냐'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래서 많은 대학들에서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줄이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더 큰 목소리로, 산업계에서 필요한 인력수요를 '정확히' 예측해서 그에 맞게 교육을 해내라는 요구도 하고 있습니다. 대학과 세상의 거리를 없애버리라는 요구이지요. 중세로부터 이어져 온 고집스러운 '거리 두기'의 관습은 이제 해체될 운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그 귀찮은 예복입기 전통을 옹호하는 데 앞장선, 19세의 해리슨 에드몬드라는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가운 아래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당신이 이튼을 나왔든, 가난한 유색인종이든 우리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억은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차별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살면서 세상과 조금쯤 불화해 보는 기회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쓸모없는 경험과 생각이 결국 뭔가를 창조해내지 않을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시대착오적이지요.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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