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블로그]국민을 위한 국감

[아시아경제 유인호 기자] "올해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편한 마음으로 지켜본다."

최근 만난 한국거래소 고위 임원의 올해 국감 관전평이다. 거래소가 공공기관에서 해제된 후 처음으로 맞는 국감 시즌이다.

이 임원도 10년 가까이 국감 시즌만 되면 하루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국감 시즌엔 긴장의 연속이었다. 집에도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는 "지난해 국감에서 거래소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받았다"며"'방만경영' '낙하산 인사' '신의 직장' 등이 꼬리표처럼 붙어서 괴로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국감을 보면 이 임원의 말이 수긍이 간다. 연일 국감에서 고성과 비방, 욕설이 난무한다. 공무원이나 기업인들을 국감장으로 불러 망신을 주는 것은 연례행사처럼 치러진다.

직원들도 국회의원들의 무리한 자료 제공 요청에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하기 어렵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무총리실 등 주요 정부기관이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기업인들은 국감을 받으러 먼 곳까지 가야만 한다. 시간과 돈 낭비라는 비판에 동감이 가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물론 국감은 필요하다. 정부가 1년 동안 국민의 혈세인 세금을 잘 사용했는지, 기업 비리로 피해를 입은 국민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국민연금공단의 국감을 보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국민연금 국감에서는 엘리엇과 삼성물산 분쟁을 둘러싼 기금운용본부의 행보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고위 수뇌부를 만나 삼성물산 합병 건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간 루머로만 돌았던 국민연금과 삼성 수뇌부 간의 긴밀한 관계가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지난 상반기 증시를 흔든 '가짜 백수오 사건'의 주역인 내츄럴엔도텍의 사과 표명도 국감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가짜 백수오 파문의 중심에 섰던 김재수 내츄럴엔도텍 대표는 지난 14일 국정감사장에서 책임을 따져 묻는 국정감사 질의에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김 대표는 국회의원의 사과표명 요구에 동문서답을 하며 피해갔으나 결국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책임 회피 태도에 비난이 이어지자 김 대표는 "사과한 것으로 생각했다"며 "잘못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국회의원을 위한 사죄는 아니다. 내츄럴엔도텍에 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은 투자자에게 한 것이다.

국민연금과 내츄럴엔도텍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결국 국감은 국민을 위한 것이다.

거래소만 국한해서 보더라도 지주회사 체제 전환 문제와 관련한 국민들의 궁금증을 국감을 통해 속 시원하게 풀어줘야 한다.

민간이지만 국가ㆍ국민 경제와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내년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위한 질의를 할 수 있다면 거래소도 국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 자리'라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강조되는 국감장이지만 정작 국민을 위한 국감이 실종됐다는 비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유인호 기자 sinryu00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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