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박근혜 대통령의 말을 '번역'해 주는 소프트웨어가 등장했다. 현대 기술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졌지만 결국에는 해낸 모양이다. 이제 대통령이 당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해도 국민들이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세계에 유례가 거의 없는 셈이니 정보기술(IT)강국의 위상을 또 한 번 높인 쾌거라 할 만하다.
미답의 경지인 이 기술을 선보인 화제의 주인공은 페이스북에 있다. 개설한 지 3일 만에 1만명이 '좋아요'를 누른 이 페이스북은 '박근혜 번역기'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설명에는 '대한민국 최고존엄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을 번역해 드리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페이지입니다'라고 했고 '직역, 의역, 오역이 있을 수 있다'는 주의 사항도 잊지 않았다.들여다보면 박 대통령의 말을 입력하면 우리말로 자동으로 번역해 주는 시스템은 아니다. 번역이 가능하려면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어법, 문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애당초 찾아볼 수 없으니 자동번역은 그른 일이었다. 이 번역기가 동원하는 것은 '집단지성'의 힘이다. 운영자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올려놓고 나름 번역한 내용을 곁들인다. 여기에 다른 네티즌들이 의견을 남기는 구조다. 워낙 알 수 없는 말들이 쏟아지다 보니 번역 요청도 쇄도한다.
번역 사례를 보자. 최근 메르스 현장 점검에 나선 박 대통령은 "여기 계시다가 건강하게 다시 나간다는 것은 다른 환자분들도 우리가 정성을 다하면 된다는 얘기죠?"라고 말했다. 국가적 위기에 기껏 정성 운운하는 대통령의 말에 국민들은 허탈해 했지만 번역해 보니 숨겨진 뜻이 있었다. "환자들이 격리병상에 계시다가 다시 건강하게 나간다는 것은, 또 다른 환자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뜻을 모아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 한다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기 때문에 감염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우주까지 염두에 둔 대통령의 마음을 번역기가 없었다면 이해하지 못할 뻔했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는 대문에 '내 말을 알아듣는 나라'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다. 대선 로고였던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빗댄 것이지만 내용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런 일도 가능할 것만 같다. 이해 불가의 문장을 하나 더 보면 알 수 있다. 2013년 박 대통령은 신병교육대대를 방문해 "군 생활이야 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군 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는…"이라고 말했다. 무려 신병들 앞에서 군 생활 경험이 앞으로 군 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으니 잠을 못 이룬 어린 병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속뜻은 "사병 군 생활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일자리를 만들 생각이 없기 때문에 다시 부사관으로 군 생활을 할 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였다.이 소프트웨어는 잘 굴러가면 국민과의 소통에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운영자가 발품을 팔아가며 일일이 수없이 많은 비문을 추적해 머리를 싸매 1차 번역을 해야 하는 단점이 있다. 운영자의 청와대 영입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이해 불가의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번역기가 찾은 번역이 필요 없는 완벽한 워딩이 있다. 2004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 말이다. "국가가 가장 기본적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지도 못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에 분노하며 국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갖게 됐다." 11년 후 자신에 대한 '돌직구'인가 보다.
온라인이슈팀 issu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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