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카카오톡, SM, 초록뱀미디어, 카이스트, 영화배급사 NEW, 네시삼십삼분, CJ게임즈, 파티게임즈, 영실업. 최근 중국계 자본이 인수를 추진 중이거나 지분 투자한 국내 기업들이다.
과거 기술 노하우 습득을 목적으로 쌍용차 등 제조업 중심의 기업을 인수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계 펀드인 퍼시픽얼라이언스그룹(PAG)은 최근 변신로봇 형태의 완구제품인 '또봇'으로 유명한 국내 완구 전문기업 영실업을 2500억원 안팎에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 설립된 영실업은 최근 3년새 기아자동차를 모델로 만든 변신 로봇인 '또봇'의 대성공으로 급성장했다. 2011년 349억원이었던 매출은 지난해 1100억원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 중 또봇이 차지한 비중은 62%(681억원)나 된다. 지난 3년간 또봇의 누적 매출은 1500억원 이상으로 영실업의 도약을 이끌었다는 평이다.특히 또봇은 중화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어린이 한류의 대표주자다. 지난해 9월부터 올 3월까지 대만 애니메이션 방영채널 YOYO TV에서 또봇 시즌1이 방영돼 시청률 및 방송사로부터 호평을 얻었다. 완구는 지난해에만 총 11만개 이상이 수출됐고, 내달까지 확정된 물량을 포함하면 17만개 가량이 판매됐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미디어그룹 상하이미디어그룹과 손잡고 내달 1일부터 어린이 채널 툰맥스에서 또봇을 방영키로 했다. 또 중국 완구 수입 유통 2위 업체인 칼리토의 600여개 점포를 통해 완구 판매에도 나설 예정이다.
기존에 한류 열풍을 주도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중국 자본의 러브콜이 지속되고 있다. 홍콩계 공연기획사인 주나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말 드라마 올인과 주몽 등으로 유명한 초록뱀미디어를 120억원에 인수했다. 지난해 9월에는 홍콩에서 제일 큰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미디어아시아그룹이 SM엔터테인먼트와 한중 합작 사업에 대한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
중국 포털사이트 소후닷컴은 한류스타 김수현이 속한 키이스트에 지난해 8월 150억원을 투자해 지분 6.4%를 확보했다. 중국 최대 드라마제작사 화처미디어도 지난해 국내 영화배급사인 뉴(NEW) 지분 15%를 535억원에 사들였다.
게임업계도 중국에서 자본이 몰려들고 있다. 시가총액 150조원 규모인 중국 정보통신(IT)기업 텐센트는 2012년부터 카카오톡, 넷마블게임즈, 네시삼십삼분, 파티게임즈 등 여러 게임회사와 모바일 앱 업체에 수조원을 투자해왔다.
2012년에는 카카오톡에 720억원을 투자했고 현재도 3대주주로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다. 2013년에는 넷마블게임즈에 5330억원(지분율 28.0%)을 투자했고 3대 주주다. 국내기업이 유치한 해외 자본 중 가장 규모가 컸다. 또 지난해 모바일게임사 네시삼십삼분에 라인과 공동으로 1300억원을 투자해 지분 25%를 확보한 상태다. 텐센트는 파티게임즈에 200억원을 투자, 주식 20%를 확보한 2대 주주다.
중국 자본의 한국 기업 투자 및 인수는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코트라 다롄 무역관에 따르면 중국 기업이 지난해 한국 기업을 인수ㆍ합병한 사례는 동양증권, 아가방, 초록뱀미디어 등 5건으로 금액으로는 6억6111만 달러였다. 2013년 2364만 달러(3건)보다 금액 기준 30배나 늘었다.
특히 과거 핵심기술을 따라잡기 위해 제조업 중심의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콘텐츠 제작기반을 중국으로 이동시키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선 한국기업이 가치평가를 높게 받는 것도 좋지만 이대로 중국의 자본력에 밀려 핵심 산업들을 차례로 내주는 것이 옳은 것이냐는 지적도 나온다. 차이나머니의 유입은 국내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되지만 중국 자본에 의한 한국경제 잠식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최근 한ㆍ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중국시장을 겨냥한 차이나머니의 국내기업 인수 사례는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이 같은 우려를 커지게 하고 있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한류 중심의 콘텐츠산업 육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중국 등 외국 자본의 국내 콘텐츠 기업 인수는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훼손당하는 것"이라며 "이는 국가 경제 전체 차원에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로 콘텐츠 산업의 지원과 육성이 제대로 되고 있는 것인지 면밀히 검토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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