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귀신 관치에 발목잡힌 대한민국 금융‥"당국 입김에 피멍"

[한국금융 지배구조 리스크 ①] 대한민국 금융혁신, 이것부터 해결하라

KB CEO승계 도입 보류‥"정치적 입김이 개혁 줄이는 최대 복병 재확인"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김대섭 기자] 대한민국 금융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저금리 저성장의 업황 악화에 생존을 위한 혁신이 시급하지만 관치에 발목이 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일부 노른자 자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리품으로 전락하면서 금융의 후진적 병폐를 낳는다. 최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금융이 뭔가 고장났다"고 질타했지만 정작 정부와 정치권이 금융개혁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빗발친다.순항하던 KB금융 윤종규호(號)가 암초에 걸린 것도 결국 '관치금융'으로 귀결된다. KB금융은 9일 오후 열린 이사회에서 차기 최고경영자(CEO) 선임시 현직 CEO에게 연임 우선권을 주는 승계 프로그램 도입을 결정하고 못하고 또 다시 보류했다. 지난 달 27일 이사회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한데 이어 두번째다. 이달 KB금융 주주총회에서 차기 이사진이 구성되면 승계 프로그램을 다시 논의하겠지만 경영 전략은 꼬일대로 꼬였다. 돌이켜보면, 지난해 터진 KB사태도 관치 탓이다.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를 놓고 임영록 지주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 간의 갈등이 불거진 내면을 보면 파워게임의 막장 드라마였던 셈이다. 그 바람에 조직은 만신창이가 됐다.

관치금융에 따른 지배구조 리스크는 비단 KB금융 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년 말 차기 행장자리를 놓고 관치금융 논란을 일었던 우리은행의 지배구조 리스크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 지배구조 논란의 핵심은 '서금회'다. 박근혜 대통령이 2007년 17대 대선 후보 경선에서 탈락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강대 금융인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작년 말 연임이 유력시되던 이순우 행장이 몰라난 뒤 서강대 출신의 이광구 부행장이 선임되면서 논란이 된 우리은행의 서금회발 지배구조 리스크는 서강대 출신의 정한기 호서대 교양학부 초빙교수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 교수는 2011∼2012년 유진자산운용 사장 시절 서강회의 송년회와 신년회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정부에서는 '4대 천왕' 리스크가 금융권을 뒤흔들었다. 4대 천왕은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대학출신인 어윤대,이팔성,김승유 회장을 비롯해 대선캠프에서 활동했던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을 의미한다. 어윤대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인 고려대 교수로서 총장을 지내고 MB정부 출범에 맞춰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다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복귀했고 이팔성 전 회장도 한일은행에서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뒤, 이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로 활동하다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금융 회장이 됐다. 이 회장은 당시 증권거래소 이사장의 유력 후보로 꼽혔지만 관치 논란이 거세지면서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선임됐다는 뒷말을 낳았다. 한일은행에서 은행원으로 출발한 김승유 전 회장도 연임에 성공, 6년 4개월간 회장직을 맡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야인' 시절부터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던 강만수 전 회장 역시 MB정부가 출범한 2008년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을 거쳐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영입됐다. 이들은 임기동안 굵직한 현안을 추진했지만 대통령과의 친분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른다는 눈총도 샀다.관치금융의 지배구조 리스크는 한국 금융시장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세계경제포럼(WEF)이 평가한 작년 한국 금융시장 성숙도는 80위였다. 2007년 27위에서 무려 53계단이나 추락했다. 금융권에서는 "국내 금융산업의 위상이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못하다"는 한숨이 쏟아졌다. 임종룡 금융위원장 내정자가 "지금이 금융혁신의 적기"라고 말했지만, 전문가들은 "금융혁신의 시작은 외풍으로부터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은 "금융을 필두로 한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발전 없이는 한국경제의 도약이 어렵다"며 "제도적 결함들이 개선돼 금융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회복되고 한국 금융산업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금융회사가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당국의 입김에 흔들리는 부실한 지배구조 때문"이라며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강조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김대섭 기자 joas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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