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우수도서 선정기준' 반발‥"시대착오적 발상"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문화계가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 세종도서 우수도서' 선정 기준에 반발하고 나섰다. 최근 문체부의 '2015년 우수도서(세종도서) 선정사업 추진 방향' 운영지침'에 따르면 우수도서 선정 기준에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순수문학 작품', '인문학 등 지식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며,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하는 도서'라는 항목이 새로 추가됐다.

당초 '2014년 세종도서-문학나눔사업'을 진행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세종도서 심사위원회 운영지침'에는 “예술성과 수요자 관점을 종합 고려해 우리 문학 저변 확충에 적절한 작품”을 선정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즉 이번에 정부가 ‘특정 이념’과 ‘국가경쟁력’이라는 조항을 우수도서 선정 기준으로 제시, 논란을 일으켰다. 26일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 등 문화계는 "세종도서 우수문학도서’ 운영 방침에는 현 정부의 문학에 대한 몰이해와 구시대적 발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며 "헌법에 보장된 사상·표현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고 반발했다. 문체부의 우수도서 사업은 교양ㆍ학술ㆍ문학 3개 부문 우수도서를 선정해 공공도서관과 사회복지시설 등에 배포하는 사업이다. 올해 142억원이 투입된다. 이에 문화계는 공동성명 및 각종 토론회 등을 통해 정부의 방침에 맞설 계획이다. 반면 문체부는 "이번에 내놓은 기준은 대안 중의 하나"라며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오는 3월 사업 공고 때 구체적인 심사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계는 이번 우수도서 선정 기준 변경이 '종북콘서트'로 논란이 된 재미동포 신은미씨 사태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씨가 쓴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는 2013년 문체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가 종북 논란에 휘말려 최근 선정 취소 및 회수 조치 당했다. 이어 문체부는 ‘2015년 세종도서-문학나눔의 선정 기준'을 변경, 특정이념 및 국가경쟁력을 제시하면서 정부와 문화계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이와 관련, 한국작가회의 등은 새 기준이 문학작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 잣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한국작가회의는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인 ‘사상·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작가들의 상상력을 미리 제한해 한국문학의 저변을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출판인회의도 "우수문학도서 선정 기준은 출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함으로써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담은 작품들을 출판, 동시대의 독자들과 공유할 출판인들의 자유와 권리마저 원천 봉쇄하게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문단은 이번 지침이 오래전에 폐기된, 철 지난 순수문학논쟁을 연상한다는 분위기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모든 위대한 문학은 순수문학이며 참여문학이다. 순수와 참여를 가르는 이분법적 논쟁은 이미 60년대 초에 끝난 이야기"라며 "문체부의 기준은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문학을 배격,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 역시 "순수문학을 굳이 분별하려는 것은 덧없는 일"이라며 "60년대는 지금과 달리 문학이 사회적 의제의 공급원 노릇을 하던 시기였으므로 순수, 참여 논쟁은 문단을 넘어 사회 전반에 걸쳐 진보·보수 세계관을 대표하는 시금석으로 유통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의 사회 의제는 정치·사회적 갈등과는 다른, 새롭고도 유례없는 도전에 직면해 문학이 자원의 고갈, 인구 폭발, 기후 변화, 종족 갈등, 빈부 격차 및 양극화 등의 문제와 맞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성태 작가는 "현재의 한국문학은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분투해 온 문학인과 출판인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자산이며 역사"라며 "현 정부는 소중한 우리의 문학적 성과와 출판의 역사를,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돌연 수십 년 전으로 되돌리려 한다"고 설명했다.

"지금도 문단 바깥에는 순수문학 대 참여문학의 대립 구도가 고정관념처럼 남아 있다. 그 시각으로 오늘의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순수-참여논쟁은 벌써 반세기 전의 일이므로 오늘의 쟁점을 담아내기에는 시효가 지났다. 시인·작가들의 직접적인 관여를 요구하는 현실 사회의 호소와 압력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해왔다. 문학의 현실 참여는 작가의 내면에서 솟아난 주체적 욕구이면서 동시에 외부 현실에서 가해지는 객관적 요구일 따름이다." 염무웅 교수의 의견이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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