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머니 기름값에 미끄러진 정유사 비명소리

반년 만에 40% 가격 빠진 기름값…중동-미국 기싸움 한국업체들 치명타
올 정유부문 손실 규모 사상 첫 1조원 넘어, 지속적 손해로 시장 고사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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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전 세계의 이목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집중됐다. 이날 이곳에서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정기 총회가 열렸다. 국제유가가 임계수준 밑으로 떨어진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그 어느 총회 때보다 감산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하지만 결국 감산 합의에는 실패했고 직후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원유 선물시세는 한때 배럴당 65달러까지 하락했다. 5년 4개월 만에 최저치였다. 이후 국제유가는 69달러까지 회복됐으나 급락세의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유가 급락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과 산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유가 하락은 석유를 수입해 쓰는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유가 하락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지난 6월 11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 유가는 약 반년에 가까운 짧은 기간 동안 60달러대로 수직 하락했다. 지난 6월 대비 불과 5개월 만에 40%가 빠졌다. 기업이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다. 완만한 속도로 유가가 하락하면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른 제품 가격 하락, 소비 증대, 경기회복의 선순환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빠르게, 급격하게 유가가 하락할 경우 환율이 급변하고 디플레이션 고착에 따른 경기성장 둔화 등을 야기할 수 있다. 특히 정유업종을 비롯해 신재생에너지 업종, 조선업종 등엔 큰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 밑지고 판다는 거짓말이 현실로…'마이너스' 된 정제마진= 정유업의 수익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원유를 석유류 제품으로 정제했을 때 발생하는 이익)의 악화는 2012년 4분기부터 시작됐다. 이후 지난해 3분기와 4분기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더니 올 들어서도 2분기와 3분기 연속 마이너스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팔수록 손해인 셈이다.이 같은 상황은 왜 발생한 것일까.

최근 몇 년간 중동 및 아시아 국가들은 역내 정유설비 신·증설에 주력했다. 실제 2009년 이후 아시아 중동의 설비 증가 규모는 연평균 110만b/d(barrels per day)에 달했다. 하지만 중국 경기 둔화와 세계경기 회복 불투명에 대한 우려로 석유 수요의 상승 폭은 제한적이었다. 석유제품의 수요는 정체돼 있는데 공급자의 생산량만 증가하다 보니 수요, 공급의 기존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공급자는 보다 저가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고 수요자는 보다 저렴한 가격을 기대하며 구매 시기를 늦췄고 이에 따라 정제마진이 점차 축소된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셰일가스 혁명 등으로 미국에서 남는 석유제품이 유럽시장으로 가는 상황 속에 한때 천문학적인 석유제품을 수입해 사용하던 중국이 석유제품을 수출하기도 하면서 정제마진은 더욱 줄어들기도 했다. 중국 내 정유설비 신·증설 물량 확대로 국내 소비를 모두 소화하고도 일부 유종, 특히 경유 제품의 경우에는 재고가 남아 수출하기도 했던 것. 이 제품들이 싱가포르 석유거래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역내 경유 마진이 폭락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대형 수요시장이었던 인도네시아의 유가 보조금이 감소하면서 수요가 더욱 위축되는 등 역내 수급 불균형은 점차 심화되고 있던 상황이다.

◆중동 vs 미국 '원유 전쟁'에 낀 한국…바닥은 언제?= 여기에 OPEC의 원유 생산량 확대에 따른 원유가 하락은 정유사의 고민을 더욱 크게 했다. 소위 '원유 전쟁' 이라고 불리는 최근 산유국들의 원유 생산 경쟁이 발생한 것.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와 리비아의 산유량은 크게 늘었고,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국영석유사인 아람코가 아시아 지역 수출 원유에 붙는 프리미엄(OSPㆍOfficial Selling Price)을 낮추며 유가 하락을 도왔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시발점으로 한 셰일오일, 가스 붐에 따른 비중동국가의 원유 생산 증가로 국제 원유가격의 하락에는 브레이크가 없어 보인다. 업계는 향후 국제 원유 가격이 60달러 밑으로 떨어질 것도 각오하고 있는 분위기다.

전문가들도 최근 원유 가격의 흐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이제 바닥이다"는 전망을 수 차례 내놓았지만, 매번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리고 있기 때문. 전문기관들도 유가 최저점 전망을 언제부터 해왔는지 깜깜할 정도로 최근의 유가 하락세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원유가 하락이 치명타…올해 정유부문 손실 규모 사상 첫 1조원 돌파= 문제는 국제유가 하락이 국내 정유업계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 정유사는 2~3개월 전 사들인 원유를 정제해 석유제품과 화학제품을 생산한다. 때문에 짧은 기간 유가가 오르내림을 반복하더라도 유가변동으로 인한 이익 또는 손실이 발생한다. 하지만 최근처럼 국제유가가 꾸준히 하락할 경우, 미리 사둔 재고분에 대한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원유 구입부터 제품판매까지 1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제품 정제, 판매와 무관한 손실이 자연스럽게 발생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S-OIL,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4사의 지난 3분기 총 영업이익은 340억원에 불과했다. 전체 매출 38조7262억원의 0.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이들 모두 석유화학과 윤활유 부문 등에서 손실을 메워왔지만 매출 비중이 큰 정유부문의 손실을 감당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는 올해 정유부문의 1년 누적손실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던 정유사들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통상 정유사들은 유가와 환율을 고려해 사업계획을 짜는데, 전망 이상으로 국제유가 하락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사업계획 수정에 들어간 곳도 나오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말에 배럴당 70달러 선이 붕괴되고 최대 30달러 선까지 내려간다는 전망이 나왔다"며 "배럴당 70달러 안팎을 염두에 두고 내년도 사업계획을 짜고 있는데 수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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