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한국産의 자존심을 지킨다'
일본 진출에 대해 설명하는 최규복 유한킴벌리 대표. 유한킴벌리는 기저귀 강국 일본에 최근 우리 기저귀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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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로 넘겠다" 야심차게 준비
블라인드 테스트서 현지 제품 눌러[대담=이정일 산업부장]지난 5일 유한킴벌리가 '외산 제품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일본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마존 재팬을 통해 하기스 기저귀 유통을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일본 기저귀의 공습에 시달렸던 한국이 마침내 '기저귀 반격'에 나선 셈이다. 1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유한킴벌리 본사에서 만난 최규복 대표는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최 대표는 "일본 기저귀 시장 진출은 3년간의 '절치부심(切齒腐心)'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강조했다. 게다가 가격이 아닌 품질 승부다. 그는 "일본 기저귀의 품질에 절대 뒤지지 않을 자신감이 있다"며 "시간이 좀 걸린다 해도 프리미엄급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韓 기저귀가 日에 뒤진다니…'자존심에 금'=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가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 온라인 기저귀시장은 일본산(産) 기저귀가 장악하고 있었다. 군ㆍ메리즈 등 얇고 부드러운 일본 기저귀가 온라인시장 매출의 50%를 차지했고, 인터넷에서는 '일본 기저귀가 한국 기저귀보다 품질이 좋다'는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최 대표는 당시 기저귀를 포함한 유한킴벌리의 유아용품 전체 총괄을 맡고 있었다. "연구소에서 진행한 흡수력 테스트나 고객 대상의 만족도 테스트를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우리 회사 제품(하기스)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주부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한동안 의문에 빠져 살았죠."
답은 '다름'에 있었다. 일본의 기저귀는 얇고 부드러운 질감을 추구하는 데 비해 우리 기저귀는 푹신푹신한 안락함을 추구했다. 양국 소비자의 성향 차이가 제품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곧바로 안감의 부드러운 질감을 보강했다.
"많은 분들이 일본 방사능 때문에 유한킴벌리가 기사회생하신 것으로 아는데, 사실은 사고 전에 제품이 이미 출시됐습니다. 품질적으로 국내 제품이 일본 제품보다 우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돌아선 소비자들의 수요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없었을 겁니다."국내시장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유한킴벌리는 3년간 일본시장에 진출할 준비를 했다. 한국 기저귀가 일본 기저귀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의 성향을 감안해 만전에 만전을 기했다. 3년 전부터 일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지난해에야 유한킴벌리 기저귀가 일본 제품을 눌렀다.
"일본 기저귀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온라인이었어요. 이제는 우리가 반대로 온라인시장을 통해 일본에 진출하려고 합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당한 것은 그대로 돌려줘야죠." 일본의 온라인 기저귀시장 규모는 전체의 10%로 우리나라에 비해 작다. 하지만 아마존ㆍ라쿠텐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일본 신생아 수는 연간 약 100만명으로 우리나라(40만명)의 두 배가 넘는다.
창의력 위한 '스마트워크제' 도입
시니어 용품 사업에도 눈 돌릴 것◆스마트워크, 일하는 장소가 아니라 방법 바꿔야=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뿐만 아니라 유한킴벌리의 새로운 시도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스마트워크다. 2011년부터 개인 자리의 구분을 없애고, 근무 시간도 자유롭게 설정하며 창의적 기업환경을 조성한 결과 많은 기관과 기업이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최 대표는 "아직도 스마트워크 실험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회사들이 많은 수의 신입을 거느리고 부장이 군대식으로 위에서 지시하는 체제였지만 요즘은 회사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항아리형이나 역피라미드형처럼 신입 수가 작은 조직도 있습니다. 옛날처럼 상명하복이 먹히는 문화가 아니에요. 그래서 무조건 조직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수평적 문화와 협업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두 가지를 모두 추구한 사무실이 바로 스마트워크입니다."
그래서 유한킴벌리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유연성'이다. 9시 출근ㆍ6시 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오전 7시부터 출근하고 더 일찍 퇴근하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공간도 유연해졌다. 테헤란로뿐 아니라 죽전과 군포에서도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췄다. 이제 남은 도전은 '인적 자원의 유연성'을 실현하는 것이다.
"제품 마케팅을 하면 마케팅만 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필요에 따라 다른 업무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평생교육과도 접목된 개념이죠. 20년간 똑같은 업무만 한다면 배울 게 뭐가 있겠어요. 아직 시작 단계지만 점점 개념을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회사 내에서 '팀'이라는 단어를 없애고 '워크그룹'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죠."
아기 기저귀를 주력 상품으로 하고 있는 유한킴벌리는 이제 노년층시장에도 눈을 돌리고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관련 용품을 개발하고 노년층의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시니어(노년층) 용품이 아기용품보다 시장이 더 큽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유아용품의 10분의 1 수준이에요. 저희조차도 아직 적자를 보고 있지만 포텐셜이 워낙 커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노년층 대신 '시니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제품을 쓰는 고객층에 늙어 보인다는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현재 노년층 제품의 시장 수요는 커지고 있지만 정작 사용자들은 아직 요실금 팬티 등의 제품을 쓰는 것을 꺼리고 있다. 부끄러워서다.
"시니어가 되기 싫은데, 제품을 사용하면 본인이 시니어임을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셈이 되니까 자괴감 때문에 제품을 피하는 거예요. 하지만 시니어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노화현상이에요. 그런 관념은 어서 깨져야 합니다. 저는 몇 년 새 확 깨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정리=이지은 기자 leezn@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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