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통신 1호]김은경 시인의 '담배 한 개비'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담배 한 개비"

김은경"외삼촌이 넷 있었다. 그중 세 분이 살아 있는데, 셋째 외삼촌은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외톨이로 서 있다. 그는 이발도 빗질도 하지 않아 푸석푸석 긴 곱슬머리를 만장처럼 휘날리며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야수 같은 입성을 하고 다녔다.
방학이라고 외가에 놀러 가면 외삼촌은 늘 사촌아이와 내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가야산 골짝에 있는 외가에서 초등학생 걸음으로 족히 한 시간은 가야 담배 가게가 나오는 터라 심부름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는데, 어른의 부탁이라 대놓고 거절하지도 못했다. 결국은 홍시를 씹거나 마른풀을 홰홰 호작질해 가며 황톳길을 왕복해 가게까지 다녀오곤 했다.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나서야 외삼촌이 왜 가족들과 동떨어진 섬처럼 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됐는데, 동네 건달로 살던 그가 5공화국 시절 쥐도 새도 모르게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 오면서부터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채로 살게 됐다는 얘기였다.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아내를 잃고, 이유도 모른 채 공권력에 의해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고, 하나 있는 딸애마저 스스로 건사하지 못한 채 살던 마흔 줄의 사내에게 삶은 얼마나 형벌 같은 것이었을까. 형님네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받은 푼돈으로 가끔 소주나 한 병 사마시고, ‘솔’ 담배를 태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을 게다. 함민복 시인이 ‘담배는 영혼의 뜸’이라고 말한 것처럼, 그에게 담배는 평생 아물지 않는 통증을 잠시나마 허공으로 띄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끈이었을 게다.
스물세 살, 처음으로 담배 한 모금이 내 흉골 속으로 들어와 어지러움과 슬픔이 섞인 묘한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던 날, 나는 외삼촌의 담배 피던 모습을 떠올렸었다. 항상 먼 데를 향해 있던 그의 텅 빈 두 눈이 생각났고, 내 슬픔이 그때 그의 슬픔과 다르지 않은 색(色)이라 여겼었다.

그런데 담뱃값이 2천 원이나 오른다고 한다.
사실 나는 애연가라고 자처하지만 한 달에 한 갑 정도 피우며 절연(節煙)하는 편인데 뉴스를 접하자 실소가 절로 나왔다.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다는 보건복지부의 핑계는 삼척동자도 안 믿는다. 담뱃값만이 아니다. 주민세와 자동차세 인상안도 발표됐다. 세금폭탄의 직격탄을 맞는 건 외삼촌이나 나처럼 주머니 빈 서민들이다. 가진 사람들의 재산세, 소득세는 그대로 두고 서민들 주머니나 털어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거다.
2013년 하반기 통계자료를 보면 월 10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 저소득 근로자의 경우 건강보험 가입률이 21.1%라고 한다. 보험료 낼 형편도 안 되어 건강보험조차 없는 서민이 여전한 현실인데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운운하며 담뱃값을 올린다. 그 돈으로 국민건강보험 적자난 거 메우고, 이리저리 돌려쓰겠다는 꼼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담뱃값 4500원이면 서민에게 한 끼 밥값보다 많을 수도 있는 돈이다. 그러니 이제 씁쓸한 세상살이에 담배 한 개비 피워 물 여유조차 우리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밥보다 담배에 더 허기진 사람들은 밥을 굶어가며 담배를 사 피울 것이다.

공포영화 포스터에 가까운 금연 홍보 포스터를 보며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담배가 죽인 사람보다 담배가 살린 사람이 더 많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우울하고, 답답하고, 화나고, 쓸쓸할 때 담배를 물면 위안이 되었으니까, 담배는 내게 습기 없는 눈물 한 모금이었으니까. “투병하듯 어쩌면 / 투약하듯 / (…) / 쓸쓸한 부족들이 치르는 단 1분간의 묵념”이라고 어느 시에서 진술한 적도 있다.
당신, 온기 있는 차 한 잔의 위로를 아는가. 술 한 방울의 위로를, 눈물의 위로를 아는가. 담배 한 개비의 위로를 아는가.
지금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누구인가. 담배인가? 정부인가?" - 끝 -

김은경 시인은 2000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량 젤리'를 펴냈다. (사)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가 29일부터 매주 월요일 ‘작가회의 통신’을 시작한다. 김은경 시인의 '담배 한 개비'는 그 첫번째다. ‘작가회의 통신’은 작가회의 회원들을 향한,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향한, 그리고 세상을 향한 작가들의 작은 말을 담는다. 그동안 작가회의는 성명서나 논평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발언해 왔다. 그러나 부족했거나 늦게 도착했다고 판단, ‘작가회의 통신’을 기획했다. 정우영 작가회의 사무총장은 “성명서나 논평으로는 담아낼 수 없었던 주제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면서 회원 및 독자들과 더 긴밀히 소통하고 사회적 발언의 경로를 다각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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