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논문 한편에 1000명 참여하는 융합연구 외치는 '강성모主義'

"늘 한 곳에서 샘솟는 샘물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강 총장은 "한꺼번에 퍼붓는 소나기 보다 샘물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윤동주 기자]

▲강 총장은 "한꺼번에 퍼붓는 소나기 보다 샘물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윤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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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아시아경제 이정일 부장]"소나기 보다는 샘물 같은 정책으로 카이스트를 변화시킬 것이다. 단 시간에 퍼붓는 소나기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게 아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늘 한 곳에서 샘솟는 샘물 같은 지속가능한 대학이 필요하다."

강성모 카이스트(KAIST) 총장은 '샘물 정책'을 강조한다. 최근 몇 년간 카이스트는 학생들의 자살로 집단 우울증에 걸리기도 했다. 학업에 대한 부담을 견디지 못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에 구성원은 물론 국민들도 충격에 빠졌다. 강 총장은 이공계 연구 중심의 대학인 카이스트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연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총장은 "카이스트는 지난 몇 년 동안 성장과 성장통을 함께 겪었다"며 "이공계연구중심 대학으로 도약하는 노력은 유지하되 유연한 정책도 함께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하자마자 학생들이 부담을 느꼈던 교비 장학금 수혜 학점기준을 3.0에서 2.7로 내렸다. 학생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다. 강 총장은 "얼마 전 1학년 학생이 이메일로 자신의 고민을 상담해 온 적이 있다"며 "언제든 총장실은 열려 있으니 오라고 했고 학생과 2시간 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로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때로는 진심 어린 작은 위로나 격려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곳이 대학"이라고 되뇌었다.

창조경제 시대의 카이스트 역할론에 대해 강 총장은 유능한 인재, 효율적 소통, 실패를 포용하는 모험 정신 등 세 가지를 강조했다. 과학적 전문성과 기업가 정신을 탄탄하게 갖춘 재학생과 졸업생을 꾸준히 배출하고 창조경제 생태계가 성장을 이끈다는 전략이다. 창업 기업들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중복 연구와 투자를 피하기 위해 국가의 연구 지원, 투자 자본, 입주 기업 사이에서 소통을 조율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카이스트는 이를 위해 산·학·연은 물론 정부의 유기적 연계를 도모하는 케이밸리(K-Valley)라는 혁신 클러스터 모델을 구성했다.

강 총장은 "이런 모든 노력과 함께 무엇보다 실패의 가치를 존중할 줄 알고 소속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교류하면서 긴 호흡으로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창업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카이스트 혁신에 강 총장이 적극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수십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있는 공학교육 방식에 개혁을 시도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사업화까지 지원하는 '스타트업 카이스트(Startup KAIST)'는 혁신 정책 중의 하나이다. 또 창업 초기부터 해외 무대를 목표로 겨냥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등은 카이스트이기에 가능한 혁신 프로그램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여기에 카이스트가 '그들만의 리그'라는 인식을 벗고 함께 공유한다는 개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얼마 전 온라인 대중 공개 강의(MOOC)도 시작했다. 강 총장은 "무료로 제공되는 공개 강의를 통해 전 세계 시민들이 카이스트가 축적해온 지식의 가치를 알아봐 줄 것"이라며 "훌륭한 논문이나 연구 성과로 학계에서 인정 받아온 위상을 일반 대중에게도 알리고 지식의 공유로 학교와 사회가 함께 발전하는 진취적 기회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가오는 시대의 과학은 '융합과학'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의 논문 한 편에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하는 것이 대표적 융합 사례"라며 "21세기는 빠르게 변하는 시대이고 그 속도를 주도하는 것이 과학기술 트렌드"라고 분석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는 특정한 분야의 한 연구만 수행하도록 훈련된 인재, 즉 '맞춤형 인재'는 연구자로서 수명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 총장은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라고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한 뒤 "열린 사고를 가진 유연한 인재가 필요하고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소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 총장은 요즈음 하나의 사업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세종특별시에 들어설 '융합의과학원'이다. 현재 부지를 두고 약간의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데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라고 강조했다. 강 총장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 있어 생명과학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카이스트와 주변 의대 등이 결합해 미래를 준비하는 길에 뛰어들어야 하고 뛰어들 준비를 카이스트는 이미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과학의 현주소를 두고 강 총장은 "가장 큰 장점은 연구원 개개인이 우수한 인재라는 점"이라며 "근대 과학을 받아들인 시기도 비교적 늦었고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불과 60여 년 만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과학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훌륭한 과학 인재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발전하다보니 기초가 부족한 것은 아쉬움이라고 토로했다. 미국, 유럽 등 과학 선진국들은 학문을 다뤄온 역사, 일관적 국가 정책, 천문학적 예산 등 많은 강점을 가졌다고 했다.

카이스트는 앞으로 성과에 조급해하거나 페이퍼 중심 연구에 치중하는 대신 보다 자유롭게 탐구하고, 크게 보고, 연구자의 사명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곳으로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총장은 우리나라 학생들에 대해 칭찬과 함께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문제는 잘 푸는데 막상 문제를 만들진 못한다"며 "두려움 없는 질문이 필요하고 문제를 푸는 것 보다 만들고 스스로 생각하는 그런 인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수직적 대학 질서를 바꾸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는 "학생과 교수의 관계가 수직적인 것은 물론이고 같은 교수 사회에서도 위계질서가 있다"며 "이런 상명하달식 분위기는 대화를 단절시키기 때문에 과학기술이 발달하려면 적어도 학문 안에서는 동등한 위치에서 수평적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총장의 카이스트 개혁은 지금 하나하나씩 진행 중이다. 카이스트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대상으로 이공계연구중심의 대학으로 발돋움하는 길에 강 총장과 카이스트 구성원들은 서 있다.




정종오 기자 ikoki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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