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

고재득 성동구청장

고재득 성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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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지금 아파트 공화국이다. 초고층에 호화로운 부대시설을 내세우며 많은 사람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안에서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다. 아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보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성냥갑처럼 쪼개진 한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관문은 더 많아졌다. 사적 공간을 보호할수록 외려 사람과 사람 사이 벽은 견고해졌다. 닫으면 저절로 잠기는 편리한 대문들 사이에서, 대문을 열어두고 앞집 옆집 서로 드나들던 풍경은 이제 먼 옛날의 일이 됐다.함께 살지만 함께 살지 않는 이 기이한 공동주택은 두려움에 대한 보호 본능과 개인주의 문화와 결합해 부작용을 낳았다. 층간소음이 부른 각종 사건사고와 아파트 관리비 유용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시설물 노후에 따른 보수ㆍ제설 문제까지 불거지며 공동주택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제도적 차원에서 고심하고 있지만 사유재에 대한 행정력의 관여에는 사실 한계가 있다.

성동구는 지자체 최초로 2004년부터 노인정, 어린이놀이터 유지보수 등 시설물 개선 관련 지원을 하고 있지만 공동주택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다름 아닌 공동주택 거주자들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주택에 필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해와 배려의 미덕이다. 문제는 당장 이 미덕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다. 이미 굳어진 낯선 관계에서 무작정 대문을 두드리거나 인사를 건네기는 어려운 일이다. 행정은 바로 이 멋쩍은 물꼬를 터 주어야 한다.

지난해 공동주택 활성화 부문 동상을 수상한 금호4가동 대우아파트는 층간소음을 해결하려고 첫 발을 뗐다. 시작은 소통게시판 설치였다. 뭔가를 쓰려고 보니 주민들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녹색장터가 꾸려지고 꽉 닫힌 옥상은 공동경작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직접 물건을 팔고 사보는 경제교실이 열리는가 하면 어버이날에는 어르신들에게 삼계탕도 대접했다.

한가위 송편 빚기, 윷놀이 한마당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주민의 90%가 설문조사에서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이 친목과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몇 년을 살고도 인사는커녕 누군지도 모르던 사이에서 이제는 어떻게 이웃의 참여를 높일지 고민하고 육아 등을 나눌 다양한 커뮤니티 조성 방안에 눈을 뜨고 있다.

구청에 상주하는 커뮤니티 전문가의 지원으로 싹튼 공동체는 이뿐 아니다. 금호4가동 롯데아파트는 에너지 절약으로 합심해 매달 30분 자율적 소등을 하고 여름이면 마당에 간이 물놀이장을 설치한다.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초를 배부하며 소등 홍보를 하고 물놀이 안전요원이 된다. 자연스레 공동체에 스며들면서 자원봉사시간까지 인정받는다.

이제는 매달 방송이 없어도 소등이 된다는 이곳에 소등시간이면 친한 이웃끼리 모여 불을 끈 30분 동안 초를 켜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도 생겨나길 기대해 본다.

가까운 친구가 집들이를 한다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어찌나 자랑을 하던지 그의 말에 따르면 새 집엔 '프리미엄'이 있다고 했다. 처음엔 부동산 관련 프리미엄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이 이사 오는 날부터 먼저 찾아와 짐도 날라주고, 음식을 만들면 서로 건네는 등 유난히 정이 넘친다는 것이다. 친구의 프리미엄은 바로 이웃이었다.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던 선조들의 계산법에 따르면 공동주택 한 단지를 대략 100세대라고 할 때 십만 냥을 얻는 셈이다. 이런 이웃 프리미엄이 있는 곳 성동구 주민들이 모두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고재득 성동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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