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존 그레이의 표현처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는 애초에 태어난 행성부터가 다르다. 자연히 남자의 말과 여자의 말도 다르다. 남녀 대화법에 있어 미국 내 권위자로 꼽히는 데보라 태넌 워싱턴 조지타운대학 언어학과 교수는 "남자는 보고를 위한 대화를 하고 여자는 공감을 위한 대화를 한다"고 지적했다.
대화방식에 있어 남녀의 차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바 있다. 언어활동을 하는 동안 남자는 좌뇌만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90% 이상)이지만 여자는 좌뇌(6~70%)와 우뇌(3~40%)를 함께 사용한다는 것이다. 좌뇌는 논리와 이성을 담당하고 우뇌는 추상적ㆍ감상적 부분을 담당한다. 또 여자는 대뇌변연계의 일부인 해마의 크기가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 해마는 기억, 감정 등과 관련이 있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뇌 구조에 있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정표현의 수단으로 말을 자주 사용하고 간접화법을 즐겨 쓰게 되는 것이다. 남녀의 대화법 차이는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극명히 드러난다. 결혼정보회사 가연과 프리미엄 매칭 사이트 안티싱글은 미혼남녀 328명을 대상으로 '언제 연인 사이에 가장 큰 생각 차이를 느끼는가'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의 응답자들이 '대화법ㆍ애정표현의 차이를 느낄 때'라고 답했다.
소셜데이팅 이츄가 지난해 미혼남녀 1012명을 대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성의 행동'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싸움'이라는 주제에 대해 가장 많은 남성 응답자들은 싸움의 원인으로 화가 난 이유를 말해주지 않고 알아맞히길 바라기 때문'(53%)이라고 답했다. 이어 '미안하다고 말하면 뭘 잘못했는지 말해 보라고 한다'(18.8%), '진심도 아니면서 싸울 때마다 헤어지자고 한다'(12.3%) 등의 응답이 나왔다. 같은 주제에 여성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다고 말한다'(20.3%), '돌려 말하면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13.6%) 등의 답을 했다. 직접화법에 익숙한 남자와 간접화법에 익숙한 여자의 차이가 드러난 결과다.
때로 그 메워지지 않는 차이에 지쳐 포기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말 전국 기혼남녀 1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나라 부부 3쌍 중 1쌍은 하루에 30분도 채 대화를 나누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 10명 중 1명이 '대화 경험과 기술 부족'을 꼽았다. 하지만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도 결국은 같은 '지구인'. 태생이 어디냐를 떠나 현재 같은 별에 살고 있는 이들인 만큼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할 리 없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저자는 화성인과 금성인이 서로가 너무나 다른 존재임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의사소통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갈등이 생길 때 섣불리 싸움을 걸지 않고 각자 행성의 관용어 사전을 펼치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남녀의 차이, 남녀 말의 차이라는 소재는 사람들 사이에 늘 흥밋거리이며 관심대상이다.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남과 여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연구는 더욱 다양해지고 깊어진 면도 있다. 과거와 달리 남녀관계가 평등해지고 때로는 여성이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도 생겨남에 따라 이성 간 소통법에 관한 분석이 인기를 끌게 됐다.
하지만 남녀심리, 남녀관계에 관한 담론들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크다. 때로는 공감을 불러오긴 하지만 적잖은 경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거나 지나치게 과장돼 오히려 이성과 소통의 벽을 쌓기도 한다. 작은 차이를 너무 키우는 것은 아닌지, 상대적인 이야기를 절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 스타 연애강사는 '여자와 대화하는 법'이란 주제의 강의에서 남자가 여자와 대화하기 위해선 네 가지 말만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진짜?' '정말이야?' '웬일이야!' '헐!'이 그것이다. 공감과 경청을 대화와 소통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여자들의 특성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강의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렇듯 남녀 간 대화법의 차이를 극대화해 해석하는 것은 상대 성을 특이한 '별종'으로 여기게 한다. 모든 문제를 "남자와 여자는 애초에 달라" 식으로 풀어나간다면 소통은커녕 차이만드러내면서 그것으로 끝나는 꼴이 돼 버린다. 결국 원점만 빙빙 도는 것이다. 이에 더해 서로의 차이를 빌미로 때때로 소모적인 '성대결'을 벌이기도 한다. 더 나아가 남녀가 갈리는 문제 중 사회적으로 풀어야 하는 것임에도 자꾸 성별로 치환해버리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군(軍)가산점제와 관련한 논의다. 군가산점제 부활을 놓고 찬반 논쟁이 이어진 건 올해로 15년째다. 헌법재판소는 1999년 군 가산점제가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회에서 군가산점제 부활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논의해왔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군가산점제는 토론의 단골 소재다. 이 문제는 결코 단순한 성별문제가 아니나 찬성과 반대의 싸움이 때로는 성대결로 잘못 번질 때가 있다. 엉뚱하게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번져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밥보다 비싼 커피를 즐겨 마시고 명품을 선호하는 등 소비지향적인 여성 가리키는 말인 '된장녀' 논란도 한때 남녀대결 구도로 번진 적이 있다. 된장녀라는 말엔 남성의 경제적 능력에 의존하는 일부 젊은 여성을 비하하는 뜻도 포함돼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주로 다뤄지는 여성상은 '기념일에 남자친구에겐 카드(편지)를 써주면서 자신을 위해선 카드(신용카드)를 긁어줄 것을 요구하는' 존재다. 일부 여성의 행태를 '여성의 일반형'으로 획일화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 분명 다르다. 그러나 또 분명히 금성과 화성의 거리만큼 멀지는 않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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