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우리나라 산업ㆍ기술ㆍ인물ㆍ역사 속에 숨어 있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찾아 전자책(e-book) <흥미진진 경제다반사>를 발간했다. 이 전자책은 산업통상자원부 공식 블로그인 '경제다반사'에 게재된 6500여건의 콘텐츠 가운데 30건 만을 엄선해 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ㆍ흥미진진 신기술' 등 즐겁고 유익한 내용을 간추려 전한다.[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대한민국에서 널리 사용되고 사랑 받는 상품들의 '처음' 모습은 어땠을까. 그 다섯 번째는 '치약'에 대한 이야기다.고대 로마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치약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오줌'이었다. 로마시대 의사들은 오줌으로 양치질을 하면 치아가 하얗게 되고 잇몸이 튼튼해진다고 주장했고 로마인들은 사람의 소변으로 끈적거리는 치약을 만들어 쓰거나 구강청결제로 사용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치약 대신 소금으로 양치질을 했다. 오줌보다야 청결하지만 짜디짠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만약 19세기에 치약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소변이나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에 치약이 도입된 것은 1889년 일본 라이온 사에서 만든 가루 형태의 치분이 들어오면서부터다. 하지만 이 치분은 극히 일부 계층에서만 사용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방 이후까지 소금으로 이를 닦았다.
한국의 양치 문화는 1950년대 들어 락희화학(현 LG생활건강)이 한국 최초의 튜브형 크림 치약 '럭키 치약'을 출시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락희화학은 미군PX에서 쓰던 콜게이트의 3분의1 값에 치약을 만들어 팔았지만, 이미 양질의 생필품을 접한 국민들은 국산 제품은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용을 기피했다.1962년에는 불소성분이 포함된 불소치약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치약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럭키 치약은 1971년까지 시장점유율 8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이후 동신, 유한 등 치약 산업에 진출하는 기업이 늘었지만 치약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부가 물가 안정화 정책을 이유로 치약 제조 기업의 신제품 개발을 억제하고 출시 허가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정책은 1980년대가 돼서야 완화됐고 치약 신제품(16종류)은 순식간에 쏟아졌다.
1981년 LG생활건강에서는 각종 잇몸 질환을 예방하는 성분이 함유된 '페리오 치약'을 출시했고 20여년 동안 4억개 이상 판매고를 올렸다. 우리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덕분이다. 1981년 연간 150억원에 불과하던 치약 시장 규모는 1992년 750억원으로 성장했다.
1990년대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시장에도 우리 치약의 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1992년 출시된 '죽염 치약'은 2002년부터 중국에 수출됐는데 베이징에서 시장점유율 10%를 차지할 정도로 선호도가 높다.
'메디안 치약'을 만든 태평양은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이 치약이 큰 인기를 끌자 1996년에 제조 기술을 수출하기도 했다. 1998년 출시돼 '페리오 치약'과 국내 치약 시장을 양분한 애경그룹의 '2080 치약'도 수출 전선에 가세했다.
시장조사기관 칸타 월드패널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치약 시장은 23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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