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윤미옥 지아이소프트 대표
만 40세에 사업 시작해 9년 고투
왕년 '소녀골목대장'의 기술력 오기
윤미옥 지아이소프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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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첫해 매출은 0원. 창업하자마자 닥친 첫 번째 위기였다. 막막함을 넘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윤미옥 지아이소프트 대표(49ㆍ사진)의 최고경영자(CEO)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려서는 남자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하던 골목대장이었다. 호쾌한 성격에 리더십도 강해 한때 군인, 검사를 꿈꿨지만, 경영학을 공부하고 섬유기업에 입사해 상무까지 오르며 자연스레 경영자의 길로 들어섰다. 윤 대표는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위해 공부하며 재충전의 시기를 갖던 와중, 동생이 사업제안서를 들고 왔다"며 "신중하게 검토하다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해 지아이소프트를 창업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나이 40세 때다. 2004년 문을 연 지아이소프트는 위성영상을 활용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응용 처리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영상처리분석기업이다. 직원 15명에 연간 매출은 25억원대. 말 그대로 작지만 매운 고추, 강소기업이다. 윤 대표는 "기술력은 국가로부터 이미 검증받았고 외산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며 "시장을 만들어가며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해외진출 등을 추진해나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긍정의 에너지가 위기마다 기회로=위기는 창업과 함께 닥쳤다. 정부 등 공공기관과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인데, 지아이소프트가 문을 연 시기가 이미 예산이 다 짜여진 6월이었던 탓이다. 윤 대표는 "정부 예산일정을 생각 못한 채 창업해 첫해는 매출이 0원이었고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며 "첫 위기였다"고 허탈하게 웃었다.
10년차에 들어선 지금에야 웃고 넘기는 에피소드가 됐지만 그 때는 눈앞이 컴컴했다. 당장 직원들에게 줄 월급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대표는 "그 시간이 오히려 내게 큰 공부가 됐다"며 "경영학을 공부했을 뿐 영상기술 부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좀 더 본격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고 돌이켰다. 윤 대표의 긍정적인 면은 위기마다 그에게 약이 됐다. 그때 함께 했던 직원 4명은 10년이 된 지금도 근무하고 있다. 윤 대표의 두 번째 위기는 2009년께였다. 국방부문 프로젝트가 다수 연기되며 해당부문 매출이 0원이 된 것이다. 하지만 위기 이후에는 기회가 오기 마련. 이듬해 지아이소프트는 정보사령관의 판독소프트웨어를 전량 미국산에서 자사제품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소규모 기업이지만 매출이 부진했던 시기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직원들의 기술개발을 적극 지원했던 게 빛을 발한 것이다.
윤 대표는 창업 후 가장 큰 성취감을 느꼈던 때로 이 당시를 꼽는다. 이 프로젝트가 그에게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따로 있다. 2004년 창업 후 약 일 년간 매출이 없던 지아이소프트가 처음으로 따낸 계약이 바로 정보사령관의 항공 데이터베이스(DB) 구축 프로젝트였다. 윤 대표는 "솔루션 계약이 아닌, 항공사진을 하나하나 스캔하고 번호를 매기는, 말 그대로 허드렛일이었다"며 "그렇게 첫 연을 맺은 정보사령관에 제대로 된 솔루션 프로그램을 공급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욱이 외산을 국산으로 교체했다는 것은 감격 그 자체였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솔루션 계약을 체결했다가 '외산이 더 좋지 않겠느냐'는 고위급의 말 한마디에 프로젝트가 좌절됐던 적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후, "결코 우리의 제품이 미국산에 달리지 않는다. 기술력에 대한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직까지 지아이소프트가 개척하지 못한 대표적인 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윤 대표는 "국정원에도 우리 소프트웨어를 납품할 것"이라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며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였다.
◇ "여성, 남성이 아닌 여성성, 남성성으로 리더십 바라봐야"=중소기업 CEO로서 가장 힘든 점은 인력관리다. 대기업 등에서 공들여 키워온 인력을 빼 갈 때면 한숨이 나온다. 윤 대표는 "그래서 직원들이 자기 기술을 배우고 키울 수 있게끔 투자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비결을 귀띔했다.
대기업과의 용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갑의 횡포'에 시달릴 때도 곧잘 있다. 턴키 방식으로 수주하는 프로젝트에 대기업과 함께 뛰어들었다가, 수주 후 계약가격이 50%로 깎인 적도 있다. 그는 "SI업체들과 일하는 게 그렇게 치열한지 몰랐던 때"라며 "계약 과정에서 내가 너무 순진했다는 생각에 당시엔 개인적으로 힘들었지만, 이 또한 공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늘 '사람을 잘 믿는 점'을 자신의 단점이라 꼽는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장점으로도 '사람을 잘 믿는다'고 말한다. 그는 "더 믿어주는 사람이 더 좋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며 "천성인데 어쩌냐"고 환히 웃었다.
윤 대표는 CEO로서 늘 자신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고자 노력한다. 평소 "직원들이 가장 큰 고객"이라고 강조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을 우르르 끌고 다니고 자기 주장이 강했다"는 그는 오히려 CEO로 일하며 경청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는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했지만, 전문가인 직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게 오히려 성과가 크더라"고 말했다.
어느덧 10년차 CEO가 됐지만 큰 실패는 없었다고 돌이켜본다. 윤 대표는 "자잘한 실패들은 있었을지 몰라도, 딱히 실패라 할 만한 일은 없었다"며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사무실에 앉아서 혼자 생각한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힘들 만큼 결심해서 결론을 내고, 깔끔하게 다음 일로 넘어가는 타입"이라며 자신의 롤모델로는 정확한 상황판단력과 과감함을 갖춘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를 꼽았다.
윤 대표는 학창시절부터 여성리더십에 특히 관심을 가져왔다. 윤 대표는 "대학 여자 동기들이 결혼을 하면 회사를 그만 둬, 아깝다고 늘 생각했다"며 "이제는 여성성이 드러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했다. "여성, 남성이 아닌 여성성, 남성성으로 리더십을 바라봐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여성 직장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윤 대표는 "승승장구할 때만 있지 않다"며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지 늘 생각하라"고 강조했다. 직장생활은 자신의 전문성을 만들어가기 위한 준비기간이라는 것. 그는 "시간을 헛되게 쓰면 제2의 인생은 없다"며 "지금 내 직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늘 감사할 수 있는 측면을 찾으라"고도 덧붙였다.
윤 대표는 올해가 지아이소프트가 재도약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박근혜정부가 강조하는 중소기업, 소프트웨어, 융합기술 등의 측면이 우리와 맞아, 향후 정책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중소기업끼리 서로 살아남기 위해 융합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소프트웨어의 제값받기도 그의 과제다. 그는 "아직 프로그램 하나 당 제 가격을 못 받고 있지만, 지금 추진하는 사업은 제 가격을 받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5년 내 매출 1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윤 대표는 "회사 규모가 커진다고 계속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나는 거기까지"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때가 되면 다른 사업을 하지 않겠느냐"며 "안정적으로 있기보다 도전을 좋아하는 창업가 스타일"이라고 웃었다.
◇윤미옥 대표는?▲1964년 6월생 ▲한양대 관광학과 학사/ 숭실대 경영대학원 석사·박사 학위 수료 ▲1985년 아승사 입사 ▲2004년 지아이소프트 창업 ▲2009년 환경부장관상 수상 ▲2011년 정보사령관 감사장 수상
◇지아이소프트는?지아이소프트는 위성, 항공사진, 레이더, 지도 등 영상을 처리하고 분석하는 전문 회사다. 위성영상을 활용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응용·처리하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국방에서부터 기상 등 공공기관에 이르기까지 사업을 수행하며 영상활용 시스템 구축분야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사태 애플리케이션 등 솔루션을 통해 다양한 앱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부문에 집중하고 있다. 위성영상사업은 세계적으로 향후 시장성이 크다고 판단되는 분야지만 아직까지 국내 기업의 진출은 미미하다. 더욱이 국방과 기상부문을 둘 다 영위하는 전문기업은 국내에서 지아이소프트가 유일하다. 직원 15명에 연간 매출은 25억원대다. 지아이소프트는 5년 내 매출 1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르면 올해 말부터 개발도상국 등 해외진출 사업도 본격화한다.
<특별취재팀 이정일 부장·이은정·이지은·조슬기나·이승종·박혜정 기자>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사진= 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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