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일본어 봉사자 김용한씨는 밤 늦게 택시기사한테서 전화 한통을 받았다. 택시기사는 몹시 화가 난 채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일본인 탑승객이 택시요금을 보더니 다짜고짜 ‘바가지요금’이라고 우기며 경찰서로 데려다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의사소통은 안 되고, 일본인 승객은 막무가내여서 택시기사는 답답해 했다. 김씨는 일본인 승객에게 우리나라에서는 자정(오후 12시)이 넘어서면 심야할증요금이 붙는다는 걸 자세히 설명했다. 일본인 승객도 오해임을 깨닫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 중국어 봉사자 안영화 씨도 비슷한 사례를 접했다. 어느 날 새벽 6시 한 택시기사가 다급하게 전화를 걸어 왔다. 택시 기사는 명동에 있는 한 호텔에서 중국인 손님을 태우고 인천공항을 가는데, 택시 요금에 대해 설명을 좀 해주라고 하소연했다. 중국인 승객은 자원봉사자로부터 택시요금은 미터기 요금대로 받지만, 고속도로 통행료는 별로도 추가된다는 설명을 듣고서야 수긍했다.외래 관광객 1000여만명, 국내 거주 외국인인 150만여명.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사회로 진입하면서 외국인과 내국인간의 언어소통 과정에서 문화 차이로 웃지 못할 촌극이 비일비재하게 연출된다.
12일 BBB코리아가 분석한 올 2분기 ‘언어 통역 서비스 요청 자료’의 통역 유형을 살펴 보면 ‘생활안내’가 전체 사례 중 약 34%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휴대폰 매장, AS센터, 병원, 은행 이용 등 일상에서 통역 수요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항 오가는 택시기사와 외국 관광객과의 분쟁과 같이 사소한 통역 요청이 제일 많은 편이다. 택시 기사들은 요금 시비로 경찰서까지 가는 경우도 있어 공항에 가는 외국인 승객에게 이런 점을 먼저 설명해달라는 요청을 자주 하고 있다. BBB 코리아에서 활동중인 통역 자원봉사자는 4500여명. 이들의 봉사 후기엔 작은 문화 차이가 불러온 오해를 해결한 사례들로 가득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당연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외국인들에게는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경우가 많아서다.
한국인 고용주와 외국인 근로자 사이에서의 통역 요청도 많았다. 대체로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인 고용주 사이의 분쟁은 임금 체불, 과도한 작업 시간 등이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언어 소통 문제로 고용주가 겪는 어려움도 허다하다. 일례로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어(마인어) 봉사자 이영수 씨는 인도네시아 선원을 고용한 한국인 선주의 통역 요청 전화를 받았다. 인도네시아인 선원과 말이 안 통해서다. 인도네시아 선원은 "왜 그렇게 새벽 일찍 일을 해야 하냐, 근로조건이 좀 안 맞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한국인 선주는 한국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설명했지만 인도네시아 근로자가 알아듣기는 역부족이었다. 통상 우리나라는 밀물 때를 맞춰 고깃배를 띄우다 보니 새벽 일찍 일을 나가야 경우가 많다. 결국 자원봉사자가 나서서 '썰물', '밀물'을 설명하고서야 오해를 풀었다.
병원은 통역 요청 전체 3위를 차지할만큼 통역 수요가 많은 곳이다. 통역 봉사자 입장에서도 전문용어가 많고, 개인정보 문제도 있어 어렵게 생각하는 곳이다. 게다가 각국마다 병원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이 때문에 크고 작은 오해도 속출한다.
해외에서도 통역 요청도 자주 온다. 프랑스어 봉사자 송민주 씨는 지난 3월 평생 잊지 못할 전화를 받았다. 베트남에서 한국인 한분의 통역 요청 전화가 걸려 왔다. 그는 출장 중에 뇌졸증 증세가 의심된다며 어눌한 발음으로 베현지 프랑스 병원과의 통역을 의뢰했다. 송 씨는 즉각 현지 의사와 연결, 한국인 환자의 상황을 설명한 후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도왔다. 서울에서의 원격 통화로 이뤄져 환자가 무사히 퇴원할 수 있도록 도운 사례다.
BBB 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그냥 지나치다 보면, 외국인들에게 오해와 갈등의 씨앗을 남길수도 있다"며 " 반대로 소통을 통해 상대방에게 좋은 기억을 남겨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상생활에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낄 경우 언제든지 ‘bbb통역’ 앱 또는 유무선 전화를 통해 bbb 대표번호(1588-5644)에 연결해 필요한 언어의 통역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등록 비영리 사단법인 비비비코리아(BBB KOREA)는 외국어 능력을 이용한 재능나눔, 언어문화 자원봉사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최초로 유일한 언어문화 봉사시스템인 digilog (digital+analog) 시스템을 적용해 19개 외국어에 능통한 4500여 명의 지식인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통해 직접적인 통역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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