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떠난 다음 손 흔드는 격이 우리의 일상사다. '왜 미리 그걸 몰랐나' 하고 되뇔 때가 다반사다. 삼성ㆍ애플의 특허전쟁을 봐도 그렇다. 코오롱ㆍ듀폰의 영업 비밀 침해 소송 평결도 그렇다. '큰 물에서 놀아라'는 말이 있다. 우물 안 개구리로 지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기기 힘들다는 뜻이다.
페이스북이 자체 모바일 운영체계(OS)를 이미 개발해놨다는 최근 소식은 우리를 심각하게 돌아보게 한다. 페이스북 주가가 폭락한다고 하지만 '결코 쉽게 물러설 기업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스쳐간다. 삼성이 이번에 당한 시련은 결국 구글의 대리전을 치르다가 겪게 된 불상사다. 안드로이드 OS 같은 것을 약관의 페이스북도 만들어내는데 우리 기업은 왜 할 엄두조차 못 내는 걸까.페이스북, 그 이름의 뜻은 단어 그대로 앨범 얼굴 책이다. 하버드 대학 동창들의 앨범집을 디지털화하다가 마크 저커버그라는 청년이 친분교신(SNS) 사업화한 기업이다. 자체 OS를 확보했다는 뜻은 스마트폰 사업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라는 의도로 충분히 해석 가능하다. 애플에서 이탈한 OS 인재들 일부를 영입해 자체 OS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굴지의 OS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인 미국에서 동종 기업이 하나 더 늘어난 꼴이다. 최강자 IBM, 그 다음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애플,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다른 강자 오라클-. 이들 4강 체제 프리미어리그에 최근 뛰어든 구글에 페이스북까지 합류한 것이다. 큰 물에서 놀다 보니 그들만의 리그에 저절로 진입한 걸까. 다른 나라에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데 미국에만 무려 여섯 개가 있다. 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할 만한 우리 기업은 과연 없는가. 노키아는 거기에 입성하려 시도하다가 스스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정보기술(IT)의 대표 주자격인 삼성 같은 기업은 왜 큰 물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걸까. 노키아처럼 섣불리 달려들었다가 본전도 못 추릴 거라는 두려움에 떠는 걸까. 그러나 이제는 과감히 결단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삼성이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입을 피해액은 무려 1조원 수준이다. 순전히 OS 때문에 당한 일이다. 삼성이 독자 OS를 갖고 있었더라면 당할 리 없다. 구글로부터 제공받은 안드로이드 OS가 애플 OS를 특허 침해했기 때문에 당한 일이다.애플이 구글을 직접 상대해 난타전을 펴기에는 애플 자신이 입을 수 있는 피해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짙다. 아이폰에서 만약 구글 탐색이 안 된다고 상상해보라. 아이폰이 팔릴 길이 있겠는가. 그러니 애플로서는 구글과 공생의 길을 당분간이라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회공격 전술을 펴서 구글의 대리인으로서 삼성을 겨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삼성이 대리전을 치러주더라도 그 대가를 너무나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는 점이다.
1조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금액의 단위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독자 OS를 개발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3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2년간 석사급 프로그래머 1000명을 동원하고 진두지휘할 기술자가 투입되기만 하면 상용 OS를 개발할 수 있다. 총개발비의 30% 수준 비용이 그냥 공중으로 증발된다고 생각하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 정도로 당하면서도 오기도 없나 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의 경우는 노키아와는 성격상 판이하다. 노키아는 억울하게 당한 일이 없었고 따라서 오기를 부릴 만한 사건이 없었다. 그러나 삼성은 자존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결국 작은 물에서 노는 물고기들뿐이란 말인가. 기업은 그렇다고 친다면, 정부는 국가 소프트웨어 대계에 전혀 관심도 없는가.
문송천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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