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대 출간된 '조선풍속풍경사진첩'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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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괴담 크로니클①] 시체 찾으러 명동 뒤진 기자 말하길…1930년대 경성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5살배기부터 18~19살 되는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까지 잇따라 실종됐기 때문이다. 납치된 소녀들이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팔린다는 소문은 경성시내 전역을 공포로 물들였다.괴담의 시초가 된 것은 1933년 6월 5~6살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솜으로 입을 틀어 막힌 채 죽은 모습이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신문은 재빠르게 돈의동 '열빈루'라는 요리집 뒷방에서 조선 소녀의 괴사체가 발견됐다고 전했다. 소녀의 시체는 의전병원으로 옮겨져 부검한 결과 타살임이 판명됐다.
용의자로 체포된 이는 중국인 우빈해(于濱海). 경찰은 우빈해가 학대 끝에 소녀를 살해했다고 결론짓고 황해북도 사리원으로 도망갔던 그를 잡아 경성으로 압송했다.
우빈해는 주로 조선의 소녀들을 사서 길러 몸종 등으로 팔아먹는 전문 인신매매꾼이었다. 체포 당시 그와 함께 있던 이도 19살 먹은 처녀였다.그는 원래 중국 산동성 출생 아편중독자로 십 여년 전 조선에 와서 전국을 떠돌며 아편밀수, 유아매매를 해왔다. 그는 기혼자였으나 마애신이라는 36세의 조선여자를 만나 후처로 뒀다. 오늘날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살인마 오원춘과도 비슷한 행보다.
체포 당시 우빈해는 마금자(19), 마월채(18), 이마재(18), 마히자(12) 등 수양딸이 총 4명 있었다. 이들은 모두 경찰에서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취조과정에서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양아버지의 범행을 부인했다.
4자매 중 동생들은 조선말을 쓰다가도 언니들이 눈치를 주면 갑자기 중국말을 한다든지 하는 수상한 행동도 했다. 우빈해는 수양딸을 키우며 중국말을 가르쳤으며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까봐 아이들에게 중국말로만 대화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입에 솜이 틀어막힌채 참혹하게 죽은 아이는 명동근처 다옥정에 살았던 5살배기 김신통 양으로 밝혀졌다. 앞서 과일 노점상을 하던 김신통 양의 아버지 김덕운씨는 딸을 찾아달라고 경찰에 신고했지만 소식을 듣지 못하던 터였다.
김덕운씨는 열빈루 소아 살인사건이 화제가 되자 혹시나 하고 종로서에 문의해 의전병원에 있던 소녀의 시체를 확인했던 것. 그는 "병원에서 딸을 해부해 형체만 남은 알콜병 속의 시체를 보고 정신이 아득해졌다"고 당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경찰은 김양의 얼굴을 안다는 부녀자 4~5명에게 시체를 재확인했고 죽은 아이가 김덕운씨의 딸이 맞다고 결론지었다. 우빈해는 김신통 양이 밤새 울며 보채자 '울음을 그치라'고 닥달하다가 입에 잔뜩 솜을 틀어막았다고 진술했다.
우빈해를 추궁한 결과 죽은 아이 외에 '백애기'라는 이름의 또다른 수양딸 역시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다른 아이도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추정케하는 대목이다.
한편 종로경찰서는 이 사건이 전문적인 유아 인신매매단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우빈해의 진술을 들은 결과 어린아이를 유인해 중국인들에게 팔아먹는 이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경찰은 이후 경성시내 중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집중 수사했다. 그 결과 서소문 근방 매춘굴에서 중국인 서 모씨의 조선인 부인 '은뽕어머니'가 인신매매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이 '은뽕어머니'는 이미 달아난 뒤였다.
결국 사흘만에 이 사건의 실마리가 될 유아 인신매매단의 정체가 드러난다.
김신통을 우빈해에게 넘긴 이들은 박명동(37)이라는 남성과 앞서 말한 '은뽕어머니' 곽 모씨(41)였다. 이들은 모두 길가의 소녀들을 유인해 중국인에게 팔아먹는 범죄를 저질렀다. 박명동이 김신통 양을 이전 달에 유인·납치했고, 곽씨는 박명동과 함께 우빈해와 접촉해 20원을 받고 아이를 팔아넘긴 것이었다.
경찰은 유아 인신매매단 일제 소탕에 들어가 일주일만에 용의자 18명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중에 10명을 잡아들인다. 18명의 용의자 중에 장기적으로 인신매매를 하던 이는 14명에 달했다고 당시 동아일보는 전했다.
이중 핵심인물은 역시 '은뽕어머니' 곽씨였다. 그는 김신통 양을 우빈해에게 판 것 외에도 수십차례 인신매매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의 파트너 박명동은 여성을 성폭행한 뒤 술집에 팔아넘기거나 곽씨와 모의해 중국인에게 몸종으로 파는 등 극악무도한 범죄를 자행했다. 납치된 소녀들은 일부 가족에게 돌아가기도 했으나 행방이 묘연해진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한편 우빈해는 범죄 사실을 물어 중국으로 강제 추방됐으며 그의 처 마애신과 수양딸들은 무혐의로 석방됐다.
이후 5년 전 5살배기 딸을 잃었다는 이가 경찰서에 찾아오는 등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애타는 발길은 끊임없이 계속됐다.
박충훈 기자 parkjo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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