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동훈 기자] 서울시내의 한 대학교 신입생인 이규민(20)씨는 지난 13일 학과 학생회비(과비)로 25만원을 내라는 공지를 들었다. 학과 학생회장은 "4년치의 과비를 1학년에 내는 것"이라며 "졸업비ㆍMT비ㆍ스승의날 행사비 등이 포함돼 있다"고 했다. 이씨는 "졸업이 언제일지도 모르는 신입생에게 '졸업비'를 걷는다니 황당했다"며 "선배는 학과 학위수여식 행사 등 4학년 때 쓸 돈이라고 설명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학생회 선배는 "학생회비를 안 낼 경우 학과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열정과 발랄함이 넘치길 기대했던 이씨의 대학 생활은 '돈타령'으로 시작되고 있다.
대학 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 진다. 첫 학기 등록금은 100만원 정도의 입학금까지 더해져 4~500만원 수준이다. 여기에 오리엔테이션비ㆍ과비가 더해진다. 이씨는 입학금이 포함된 첫 학기 등록금으로 520여만원, 기숙사비로 47만원을 냈다. 오리엔테이션 비용은 7만원이었다. 그는 대학 입학식도 치루지 않았지만 약 574만원을 썼다. 과비까지 내게 된다면 생활비를 제외하고도 대학 입학 후 쓰는 돈만 600만원에 이른다.
물가가 오른탓일까 최근엔 '과비 인플레이션'도 두드러진다. 4~5년전 15만~20만원 수준이었던 과비는 최근 20~25만원 수준을 보였다. 30만원이 넘는 곳도 눈에 띈다. 과 학생회가 신입생들에 8학기 분을 한 번에 내게 하는 이유는 고학년이 될수록 과비 납부율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느 것이다.
과비를 사용한 곳은 오리무중이다. 모 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장을 경험한 정세빈(28)씨는 "학과 학생회비 실제 사용내역은 학생회 외부에서는 알 길이 없다. '눈 먼 돈'이 될 여지가 다분하다"며 "자체 감사를 진행하고 영수증 원본을 공개하는 모범적인 학과도 있지만 대부분은 갖은 이유로 학생회비를 부풀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학교로부터 무료로 대여하는 사물함에 '사물함비'를 걷는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학과 감사'는 학생회칙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 총학생회 대부분이 '학과 학생회비 감사'에 대한 시행세칙을 마련하지 못했다. '총학생회 시행세칙'에서 감사적용대상은 총학생회, 총대의원회, 총여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단과대학 학생회 등이다. 과 학생회는 감사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거나 세칙에 명시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A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과 학생회비는 자체적으로 운영하게끔 맡기고 있다. 총학생회라고 해서 학과 학생회비에 관여하는 것은 월권이라고 보는 분위기다"라고 했다.
총학생회 시행세칙에 '학과 학생회비 감사'를 명문화한 곳도 있었다. 한국외대ㆍ서울시립대 등은 '총학생회 재정ㆍ감사운영회칙'에서 '단과대학ㆍ독립학부는 학부ㆍ과에 대한 자치회비 및 학생회비 감사를 매 학기 시행하고 중앙감사위원회 정기 감사 종료일까지 중앙감사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고액 과비의 집행이 투명하지 못하지만 신입생들은 과비 납부를 거부하기 힘들다. '과비 미납시 학생회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단서가 붙기 때문이다. 대학생 신동천(24) 씨는 "모든 학과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학생회지만 신입생들에겐 선배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기구처럼 보인다. 대학생활에 적응 못한 후배들에게 대뜸 20만원 내외의 과비를 내라는 게 상식적일까"라고 했다. 그는 '나도 다 겪었다'고 얘기하는 선배ㆍ동기들에게서 군대문화를 느꼈다고 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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