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없거나 있어도 시신 인수 거부한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
찾는 이 하나 없는 쓸쓸한 빈소…곡소리마저 안 들리는 적막함
2013년 1271명 → 지난해 상반기에만 1290명
[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이정윤 수습기자] “다시는 이렇게 외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불행한 일들이 없기를…”
14일 오전 11시30분께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승화원 2층 유족대기실 한 켠에 마련된 서울시 무연고자 장례추도식 빈소. 이곳에서는 시신을 수습할 가족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가 된 고(故) 윤춘자(96·여)씨와 무명 김경철(24)씨의 합동 장례가 진행됐다. 장례를 맡은 의전업체에서 나온 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추도사를 읽어 내려갔다. 고인들과 생면부지의 이 직원의 팔에는 상주 완장이 매여져 있었다.
장례식이 진행되기 30분 전인 오전 11시, 서울시립승화원 1층 입구에 회색 승합차량 한 대가 들어섰다. 대형버스나 리무진 등 장례차량들이 즐비한 가운데 다소 이질적인 모습으로 들어선 이 차량에서는 아무런 표식도 없이 흰 천이 덮인 관 2개가 내려졌다.
고인에 대한 간단한 예를 표한 후 화장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다소 조촐했다. 의전업체 직원 3명, 예복을 입은 불교단체 자원봉사자 5명 등 고작 8명만이 2명이 가는 길을 배웅했다. 가족이나 지인 수십명이 양쪽으로 나란히 선 채 마지막 길을 배웅받는 다른 고인들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합동 장례가 치러진 2명 가운데 故 김경철씨는 출생신고조차 되지 않은 무연고자다.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없어 발견 당시 경찰관이 김경철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신생아였던 1993년, 양천구의 한 길목에서 경찰관에게 발견된 고인은 성인이 될 때까지 서울의 한 어린이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지난해 5월 경기 포천에 위치한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20년이 넘도록 병원에서만 지내던 고인은 지난 9일 패혈증으로 세상과 이별했다.
추도식이 진행되는 동안 무연고 빈소를 찾아오는 가족도 없었다. 고인의 죽음을 기리는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 염불자원봉사단의 염불 소리만 공허하게 들렸다. 무연고 장례식에는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불교, 기독교, 천주교 봉사단체가 돌아가면서 종교예절을 진행한다.
이날 합동 장례가 모두 완료된 낮 12시10분께. 고인들의 시신 화장이 끝난 시각도 비슷했다. 외로운 삶의 마지막에 한 줌 재로 변한 고인들의 분골이 의전업체 직원의 품에 안겼다. 그나마 가족이 있어 향후에라도 인수 가능성이 있는 고 윤춘자씨의 분골은 경기 파주에 위치한 추모의 집으로 향했다. 윤씨의 분골은 10년 동안 보관된 뒤, 그때까지 가족이 인수하지 않으면 산골될 예정이다.
그러나 고아로 자란 김씨의 분골은 그런 여건조차 채우지 못해 승화원 옆 유택동산으로 향했다. 유택동산은 무연고 상태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분골을 뿌리는 산골 장소다. 이곳으로 김씨의 분골을 모신 의전업체 직원은 간단한 예를 갖춘 뒤 분골을 산골함에 정성스레 부었다. 산골함에는 김씨처럼 나중에라도 시신을 인수할 가족조차 없는 무연고 사망자들의 분골들이 모인다. 결국 무명 김경철씨는 삶을 마감하고 나서, 분골이 돼서야 다른 이들과 섞일 수가 있었다.
이렇듯 아무도 시신을 인수하지 않는 사망자, 무연고 사망자 수가 해마다 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10명 중 8명 이상은 가족들이 '경제적 이유' 등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 해체ㆍ붕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013년 1271명, 2014년 1379명, 2015년 1676명, 2016년 1820명으로 꾸준히 늘어나다 2017년 처음으로 2000명을 돌파했다. 정식 통계가 집계된 지난해 상반기에만 1290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해 연간 추정 2500명을 넘어섰다. 매년 꾸준한 오름세를 보인 것은 물론 5년 새 2배가량 증가한 것이다.
전체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고연령자 비율도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65세 이상 무연고 사망자 비율은 2013년 36.0%(458명)를 차지했으나 2016년(735명) 40.4%를 기록했고, 지난해에는 1000명을 돌파해 42%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등록번호나 성별 파악이 불가능해 '미상'으로 분류된 무연고 사망자는 한 해 110명 안팎이다. 전체 통계에서 이들을 제외하면 무연고 사망자 중 노인 비율은 더욱 높아진다.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은 주로 경제적인 이유에서 비롯되고 있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장례비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무연고 사망자 대부분이 밀린 병원비가 있는 등 경제 빈곤층인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사망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시신 인수를 거부한다.
전문가들은 무연고 사망자 증가 이유를 가족 해체와 붕괴 현상 심화에서도 찾는다. 먹고 사는 문제로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기도 했지만 여기에 가치관의 변화가 더해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진단이다. 소통이 끊어져 살다보면 혈육의 관계가 약해지고, 죽었다는 소식이 와도 장례하겠다는 의지조차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주의,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이 강화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고, 소통이 끊어져 살다보면 혈육적인 관계도 취약해진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한국사회의 복지 제도, 안전망이 지금보다 탄탄하게 구축이 돼 있으면 무연고자로, 극빈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 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무연고자의 죽음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무연고 장례, 복지제도 같은 장치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설명 : 무연고 사망자는 가족ㆍ친척이 없거나 다양한 이유로 인수 거부된 사람들로 무연고 사체라고도 부른다. 이들은 발견장소나 소재지 행정기관에 의해 인수돼 공지와 일정 기간의 보존기간을 거쳤다가 산골(散骨ㆍ유골을 화장해 묻거나 뿌림)된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이정윤 수습기자 leejuyo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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