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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불평등은 만들어진다, 게임판을 뒤집어라

최종수정 2019.02.03 10:00 기사입력 2019.02.03 10:00

마이클 슈월비 '야바위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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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대학 입학 과정 자체는 공정한데, 같은 조건이라도 환경 따라 갈려 불공정

기득권 세력이 만든 배타적 규칙이 문제...새로운 게임룰로 불평등 재생산 막아야


텔레비전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화제다. 교육과 입시에 대한 관심이다. 코디네이터까지 고용해 자녀 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자들의 이야기가 학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건드렸다. 대학을 나옴으로써 얻는 지식과 인맥, 학위는 훗날 높은 소득을 기대하게 해주는 자원. 들어가기 힘든 명문 대학일수록 자원의 가치는 높아지며 그에 대한 보상도 커진다. 아무나 들어가서 학위를 딸 수 있다면, 그 자원의 희소성이나 가치는 준다. 그래서 이미 자원을 획득한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갖지 못하게 하려 든다. 스카이 캐슬 속 부모들의 교육열을 남의 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명문 대학들은 높은 입학 자격을 요구한다. 그 정도 자질을 갖춰야 자신들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한다.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주장 같다. 입학 과정 자체가 불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학 지원 가능성을 심사하는 과정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풍족한 가정 출신의 지원자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나은 여건을 일찍이 확보하게 마련이다. 학교 측에서 더 나은 지원자로 볼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은 순수한 지능이 아니다. 책에 둘러싸여 성장하고, 안전한 지역에서 생활하며,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의 문제다. 또한 학교라는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교사와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아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다. 물론 이런 자원과 경험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조건이라면 이런 요소들이 큰 차이를 낳는다.


마이클 슈월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야바위 게임'에서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 두 명을 비교한다. A의 부모는 모두 대학 학위를 지닌 고소득 전문직이다. B는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그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최저임금을 받는 직종을 전전했다. 누가 성공적인 학창 시절을 위한 도움을 보다 쉽게 받을 수 있는지는 명백하다. 넉넉한 집안에서 성장한 A는 고등학교 내신 평점 3.76점을 받았다. 미국 대학입학 자격시험(SAT)에서도 전국 10% 안에 들었다. B는 불우한 환경을 딛고 내신 3.25점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전국 20% 내에 속하는 SAT 점수를 얻었다. A가 일하지 않고 학교를 다니며 온전히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B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규칙대로라면 대학은 A만 입학시켜야 한다. 대학이 세운 기준에 따른 결과라서 대부분이 정당하다고 생각할 거다. 하지만 저자는 이 게임이 조작됐다고 말한다. 불공정하게 배분된 자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결과들을 놓고 입학을 결정했다는 이유다.


저자는 사회적 제도는 가시적인 논리나 게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 법칙은 중립적이지 않고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한다고 본다. 규칙들이 중첩되는 가운데 사람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폐단으로 해당 학교 출신 동문의 자녀에게 대학이 추가 점수를 부여하는 동문 자녀 우대 정책을 지적한다. "부모가 그 학교 출신인 것과 지원자의 능력 사이에는 상관이 없으니, 공정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두루 통용되고 있는 관행이며, 그 결과 이미 대졸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앞서 나가고 있는 지원자들에게 추가적인 이득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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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문제뿐이 아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자원이나 기회를 지키고 싶어 하는 집단이 규칙을 만드는 경우를 살펴보면, 비슷한 유형의 배타적 규칙들이 여럿 발견된다. 저자는 채용 등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되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옛날에는 기계 가공, 목수, 배관공, 전기 설비처럼 벌이가 좋은 직종의 영업 허가를 얻으려면, 이미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의 보증을 받아야만 했다. 만약 지원자가 인종, 민족, 성별 때문에 누군가의 보증을 받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수도 없었다. (중략) 1970년대 초로 돌아가 보면 개방적인 방향으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전까지만 해도 채용 공고는 널리 광고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장과 연줄이 닿는 이들만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장들은 대체로 백인 남성이었고, 따라서 사장과 친분이 있는 이들 역시 대체로 백인이었다. 그러니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유색인종이라면 애초에 본인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배타적 진입 장벽은 불평등을 재생산하게 마련이다. 특정 집단이 자원을 독점할 뿐 아니라, 그들이 조작하는 다른 게임의 규칙들을 바꾸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의 여성들은 1920년대에 들어서야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70년 이상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미국이 건국될 당시만 해도 권리는 오직 토지를 소유한 백인 남성에게만 부여됐다. 여성, 흑인, 품팔이 노동자들은 자신의 표를 조직해 그들이 원치 않는 정치인을 쫓아내는 것이 애초 불가능했다. 저자는 "규칙을 만드는 의사 결정체로부터 배제된 이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구걸하고, 탄원하며, 소란을 피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게 된다"고 지적한다. "1800년대 말 남북전쟁의 전후 복구 경기가 주저앉고 있던 무렵, 남부의 백인들은 흑인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서 흑인들이 정치적 힘을 발휘할 수 없도록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그 시절 만들어진 제약 중 일부는 1960년대 중반까지 남아 있었다. (중략) 앉을 자리를 허락하지도 않는 체제 속에서 점잖은 태도로 묵묵히 일하는 것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규칙을 만드는 이들은 모든 것이 순리대로 되어가고 있으며 큰 변화를 가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모든 이들에게 최선의 결과가 돌아가도록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일단 게임이 조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지고 나면, 이런 주장의 정당성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다. 저자는 "불평등은 만들어진다"며 "자원을 공정하지 않게 분배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결코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기존의 게임을 뒤집어엎기는커녕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불평등의 재생산을 가로막고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을까. 저자는 강조한다. "훨씬 더 실현 가능해질 새로운 게임의 규칙을 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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