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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의 책 한 끼]김수영의 감수성과 네이팜탄처럼 작열하는 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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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 김수영 연구회 지음 / 민음사 / 2만원

[김효진의 책 한 끼]김수영의 감수성과 네이팜탄처럼 작열하는 시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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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계 미국 흑인들(주로 흑인 노예들)의 노동요, 혼혈 흑인 크레올(creole)들이 항구 근처 유곽을 클럽 삼아 모여서 연주하고 부르던 래그타임(ragtime)과 블루스(blues), 흑인 영가(gospelsong), 흑인 브라스밴드의 행진곡에 유럽 고전음악까지 모두 합친 것이 재즈라고 한다. 음악평론가 남무성은 이 중에서 '고전적 피아노 래그타임'이 재즈의 형성에 특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래그타임 특유의 리듬구조가 재즈의 근간인 엇박자에 가장 밀접하게 닿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재즈는 삐딱하고 비제도적인 흑인음악이었다. 유색인종 소년원을 드나들던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스 재즈 시대를 열었다. 베니 굿맨은 스윙(swing)이라는 스타일을 앞세워 재즈를 백인들도 즐겨듣게 만들었다. 굿맨은 어려서 흑인클럽을 기웃거리던 백인이다. 그는 나중에 흑백을 섞어서 악단을 만들었다.

연주할 때 이들은 밝고 명랑했지만 재즈의 바탕은 서러움이다. 가볍고 실없는 선율이나 노랫말은 서러움의 반어이자 저항의 신호였다. 샤우팅(shouting)은 원래 목청을 긁어내는 듯이, 울부짖는 듯이 내뱉는 재즈 가수의 외침을 일컬었다. 트럼페터나 색소포니스트 같은 이들이 즉흥으로 벌이는 애드리브(ad lib) 대결 잼 세션(Jam Session)은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뮤지션이 많아서 더 유행했다. 비밥(bebop)을 창시한 찰리 파커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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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이 세상을 떠난 해(1968년)에 이어령과 벌인 순수ㆍ참여 논쟁은 김수영 예술론의 일단이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문화는 본질적으로 불온한 것"이라면서 "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암스트롱이나 베니 굿맨을 비롯한 전위적 재즈맨들이 모던재즈의 초창기에 자유국가라는 미국에서 얼마나 이단자 취급을 받고 구박 받았는가를 알고 있다…재즈의 전위적 불온성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꿈의 추구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이러한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고…"

6ㆍ25전쟁이 일어나기 반 년 전에 발표한 '음악'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음악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자/저무는 해와 같이…누구의 음악이 처참스러운지 모르지만/나의 설움만이 입체를 가지고/떨어져 나간다/음악이여' 권현형은 "시인의 예민한 자의식이 부과했을 마음속 형벌까지 음악과 함께 흘러가길 저절로 바라게 되면서 음악은 생의 또 다른 자아가 되기도 한다"고 해설했다.

예술과 문화에 관한 시인의 이해는 인간의 고통과 연민에 기초한다. 재즈와 재즈맨들에 대한 인식이 잘 보여준다. 남다른 감수성과 공감력이 없다면 이런 인식을 가꾸기는 어렵다. 권현형의 해설 중 '예민한 자의식'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다. 사용하는 도구(언어)가 건조하고 둔탁한 건 재즈의 도구가 반어적이었던 것과 같은, 방식의 문제일 뿐이다.

시인이 서 있던 시절이 엄혹했던 탓에 거의 모든 것을 향한 그의 섬세한 애정은 작품에서도 해설에서도 대놓고 편안하게 드러나기가 어려웠던 듯하다. 시대상이나 실천정신과 얽힌, 시인을 둘러싼 육중한 해설 및 비평을 우리는 너무 많이 접했다. 순수ㆍ참여 논쟁 등에 나타난 시인의 감수성과 공감력, 예술에 대한 신념에 그래서 더 주목하고 싶다.

더불어서 그의 미감(美感)과 독특한 시각까지.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 '네이팜탄(원제 : 레이판彈)'을 보자. '너를 딛고 일어서면/생각하는 것은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나의 가슴속에 흐트러진 파편들일 것이다…생각할 틈도 없이/애정은 절박하고/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죽음이 싫으면서/너를 딛고 일어서고/시간이 싫으면서/너를 타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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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지옥의 묵시록'에서 사용한 네이팜탄의 은유를 지금 떠올려볼 수도 있겠다. 영화사(史)에서 가장 위대한 전투 장면으로 꼽히기도 한다. 킬고어 중령은 네이팜탄으로 쑥대밭이 된 마을을 등지고 "아침에 맡는 네이팜탄 냄새가 좋다"고 뇌까린다. 서핑광인 그는 적군(베트콩)을 섬멸하는 게 아닌, 적군을 섬멸해 방해받지 않고 서핑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마을을 파괴한다.

포화(砲火)의 '향기'에 취하고, 급기야 그 모든 것에 올라 타 자기를 맡겨버리는, 한편으로 코미디 같은 이런 태도가 아니고서는 버틸 수 없는 것이 전쟁이라고 코폴라는 웅변한다. 코폴라의 은유는 네이팜탄의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인간을 마냥 압도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다만 생사에 관한 인간의 의식이나 이걸 대하는 자세의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듯하다. 사유를 유발하고 재촉하고 늘이기보다는 장악해버릴 여지가 큰 영상예술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인은 네이팜탄이라는 끔찍한 전쟁무기를 가지고 삶과 죽음, 삶에 임하는 태도를 두루 고찰한다. '과거와 미래와 오류와 혈액들이 모두 바쁘다'는 건 선명하고도 어지러운 폭발의 이미지를 감각적이고 예민한 시선으로 묘사한 결과이자 삶의 속성에 대한 형상화다.

"시적화자 '나'는 죽음이 싫으면서도 그 네이팜탄의 폭발에서 주어지는 죽음의 시간을 미리 기획하고 있다…가장 현대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자하는 시인은 당시 최신 과학의 결정체인 네이팜탄의 위력에서 느낀 놀라움을 시의 소재로 삼았던 것이다(한국문학논총 제64집, 김수영의 시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 박군석)."

김응교는 익히 알려진 시인의 시론을 그가 특유의 미감으로 묘사한 네이팜탄에서도 포착했다.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의 여러 가치 중 중요한 한 가지가 여기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 너무 개인적이지도 않게 시인에게 접근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그(시인)는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온몸의 시학을 썼다. 온몸의 시야말로 네이팜탄처럼 작열하는 시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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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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