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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라인] ‘포토라인’은 언제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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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취재진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취재진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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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설 기자] 포토라인에는 주로 유명인사들이 섭니다. 그런데 요즘은 유명인사보다 포토라인이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피해자들에게 범죄자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이 법조계에서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포토라인은 과열된 취재 열기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자는 차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1993년, 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몰려든 취재진의 카메라에 부딪쳐 이마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검찰도 이듬해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발표하고 2000년대에 포토라인 시행준칙이 마련됩니다.
법무부 훈령으로 마련된 ‘인권 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에 따르면 공인이나 조사 사실이 알려져 촬영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고 본인이 동의한 경우만 촬영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포토라인은 검찰과 언론 간 ‘신사협정’입니다. 피의자가 원치 않으면 포토라인을 지나칠 수도 있습니다.

포토라인이 무너지는 일은 흔히 있습니다. 특수활동비 40여억 원을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로 지난 2017년 11월 검찰에 출석한 남재준 전 국정원장은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쳐가다 다시 붙잡히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했습니다. 현장에서 수십 명의 기자들이 따라붙으면서 현장이 아수라장이 됐기 때문이죠. 그는 “한 말씀 할테니까 밀지마”라며 포토라인으로 되돌와야 했습니다.

국정농단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실씨는 나와있던 시위대와 취재진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현장에서 ‘프라다 신발’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취재진들이 피의자를 물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포토라인을 유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입니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 기자회견을 앞두고 취재진이 양 전 대법원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9.1.11
    hihong@yna.co.kr [이미지출처=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소환 기자회견을 앞두고 취재진이 양 전 대법원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019.1.11 hihong@yna.co.kr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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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 유지 외에 포토라인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포토라인은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권력자든 아니든, 돈이 있든 없든 혐의를 받고 있는 공인이라면 포토라인에 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역대 노태우, 전두환, 노무현,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은 이 자리에서 사과를 하기도,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뇌물수수 등 혐의로 포토라인에 섰던 이 전 대통령은 “바라건대 역사에서 이번 일(전직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는 일)이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재벌총수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017년 1월 검찰 출석과 영장실질심사로 하루에만 총 4번 포토라인에 서기도 했습니다. ‘갑질 논란’을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도 포토라인에 섰습니다. 그는 2014년 12월 땅콩회항 사건 이후 3년 만인 지난해에도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고용한 혐의 등으로 또 다시 취재진 앞에 서야 했습니다.

포토라인이 국민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하지만 검찰 조사를 받는 단계인 피해자를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최근엔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15일 대한변협(회장 김현)과 법조언론인클럽(회장 박재현)은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공동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송해연 변협 공보이사는 “포토라인에 서서 혐의 사실을 공개하고 유죄라는 심증을 갖게 되면 그걸 보는 국민뿐만 아니라 판사도 형법상 무죄추정원칙 지킬 수 있는가 그런 문제가 생긴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김후곤 대검 공판송무부장(검사장)은 더 나아가 “자칫 수사기관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이 주도하고 법원, 검찰, 경찰 등 유관기관이 참여해 문제점을 살피고 해결방법을 찾는 협의체를 구성하자”라고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벌총수, 전직 대통령도 수없이 섰던 포토라인을 왜 하필 지금 없애자는 것일까요.

'사법농단'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아무말 없이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사법농단'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해 아무말 없이 조사실로 이동하고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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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계기가 된 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포토라인 패싱’입니다. 그가 패싱을 선언하자 법조계에서도 동조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고 법조계가 모두 포토라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서울 서초동 한 로펌 변호사는 “포토라인 그 자체만 가지고 무죄 추정 원칙을 위반했거나 유죄 심증을 준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포토라인을 없앨지 말지 고민하는 것보다는 이곳에 섰다는 게 유죄인 것은 아니라는 문구를 기사 말미에 붙이는 등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포토라인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런데 질서 유지를 위해 바닥에 붙이기 시작한 포토라인은 죄가 있을까요?




이설 기자 sse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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