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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모리스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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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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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새고 있었다/물푸레나무들이 드문드문/머리를 풀고 있었다/지워버려도/지워지지 않는 바다/이베리아/따에는 물빛 하늘에는/독신(獨身)으로 마친 한 천사(天使)가/지금 가고 있느니'

시인 김영태가 쓴 '모리스 라벨의 죽음'이다. 1970년 <월간문학>에 발표했다. 김영태는 좋은 시를 많이 썼을 뿐 아니라 무용과 음악에도 박식했다. 평론집을 낼 정도였다. 서울의 부잣집에서 나고 자라 취미가 고상했다. 시만 읽어서는 김영태가 라벨의 삶과 예술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알기 어렵다. 아무튼 라벨을 무척 좋아한 것 같다. '라벨과 나'라는 시까지 썼을 정도로.
'내 키는 1미터 62센티인데/모리스 라벨의 키는 1미터 52센티 단신(短身)이었다고 합니다/라벨은 가재수염을 길렀습니다/접시, 호리병, 기묘한 찻잔을 수집하기/화장실 한구석 붙박이/나무장 안에 빽빽이 들어찬/향수(香水) 진열 취미도 /나와 비슷합니다…(후략)'

라벨은 우리 시인들의 작품 속에 자주 나온다. 라벨이 이국취미를 자극했을까. 아니면 그가 작곡한 음악에 우리 시인들이 유난히 빠져들었을까. 김종삼이 쓴 '시인학교'에도 라벨이 등장한다. 김종삼에게는 예술적 유토피아였을 시인학교에서 에즈라 파운드가 시를, 폴 세잔이 미술을 대표하듯 라벨은 음악을 대표한다. 수강생은 김소월, 김수영, 전봉래, 김관식 등이다. 김소월과 전봉래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고 세상과 불화한 김수영은 교통사고로 죽었다. 심한 주벽과 기행으로 유명했던 김관식도 불혹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했다. 김종삼도 알코올 중독과 가난에 시달렸다.

수강생의 면면이 이러하니 강사진도 만만치 않다. 후기인상파의 거장 세잔은 불우한 청년기를 살다가 뒤늦게 명성을 얻었으나 폭우 속에 목숨이 사위고 말았다. 파운드는 이탈리아 파시즘을 찬양한 죄로 추방자가 됐다. 열네 살에 파리 음악원에 들어가 재학 중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현악 4중주곡 바장조'를 작곡한 라벨은 천재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1932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회복하지 못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김상윤은 라벨이 말년에 치매를 앓았을 것으로 본다.
'볼레로'는 라벨의 작품 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클로드 를르슈가 감독한 드라마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1)가 인기를 끌자 음반이 많이 팔렸다. 를르슈는 볼레로를 마지막 장면에 사용해 감동을 극대화했다. 볼레로는 라벨의 오케스트라 기법이 집약된 명곡이다. 한 리듬이 169차례나 반복되는 가운데 두 주제가 15분 넘게 이어진다. 그러나 결코 단조롭지 않고 점증하는 긴장과 흥분 속에서 카타르시스로 치닫는다.

김영태가 노래하는 라벨 최후의 날은 1937년 12월 28일이다. 볼레로처럼 화려한 최후는 아니었다. 김영태가 아는 대로 라벨은 틀림없이 독신으로 살았다. 그래도 여자를 싫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리의 사창가를 자주 드나들었다. 양성애자로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남성도 있었다고 한다. 라벨의 삶은 그 시대의 윤리에 맞지 않는다. 김영태는 라벨을 천국으로 보내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연옥행도 쉽지 않았으리라.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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