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한파에 떠는 소상공인]'권리금 포기' 줄줄이 빈 가게…"20년 된 집도 셔터 내렸어"
[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주변 가게들 폐업한 게 수 개월 전이에요. 과거에는 한 두 주 만에 새로 입주가 이뤄졌는데 요즘은 한번 자리가 비면 채워지지 않아요."
동대문패션관광특구의 한 패션상가에서 가죽제품 등 잡화점을 운영하는 박순영씨(가명)는 치아가 빠진 것처럼 줄줄이 텅 비어있는 주변 점포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바로 앞 점포 한 곳과 옆 점포 세 곳 등 박 씨의 점포를 둘러싼 네곳의 점포가 폐업한 상태였다.
박씨는 "중국인 관광객 아니면 나도 진작 망했을 것"이라면서 "올해 들어서 한동안은 수입이 4분의1토막이 났었는데 그나마 요즘은 반토막 정도로 나아지긴 했다. 이걸 나아졌다고 해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토로했다.
◆中 관광객에 의존하는 동대문, 반토막 매출에도 안도 = 한 층 아래 여성복 코너도 사정은 비슷했다. 하행 에스컬레이터 바로 앞에 위치한 금싸라기 점포 두 곳을 포함해 곳곳의 점포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가 관계자는 이들 점포가 언제 폐업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요즘은 문의도 뜸하다"면서 "저렇게 비어있는 모습 자체가 손님들한테는 안좋은 이미지를 줘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2002년 정부가 관광특구로 지정한 동대문의 현주소다. 여의도 5분의1인 58만6000㎡(17만평)의 면적에 상가수는 31개이고 이중 야간 도매상가가 22개, 24시간 영업상가가 6개나 된다. 점포수는 3만여개에 상인을 포함해 종사자만 15만명에 이른다.
현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패션메카로 불린 동대문시장이 입주자조차 구하지못할 정도로 위기에 빠진 원인은 구조적이고 복합적이라고 말한다. 온라인과 모바일쇼핑이 대세로 자리잡고 유니클로 같은 글로벌 SPA브랜드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도소매 고객의 발길이 줄었다.
동대문을 먹여살리던 중국 바이어와 관광객들의 급감으로 매출은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인건비가 오르고 임대료가 뛰면서 원단과 부재료는 물론 완제품마저 중국산에 의존하게 됐다. 라벨갈이(원산지를 속이는 행위)마저 근절되지 않으면서 '메이드인 코리아'의 상징마저 사라졌다.
여성의류 도매로 20년차라는 한 상인은 점포정리 세일을 알리면서 "지금 동대문의류도매시장은 중국산 원단과 의류제품에 더 의존하고 있다"면서 "국내 경기만을 위한 의류시장이 돼가고 있는데 내수경기마저 침체되고 있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쇼핑몰에 치이고 中의존도 높아지며 위기 봉착 =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 나가는 일도 쉽지 않다. 평화시장 근처에서 각종 의류ㆍ잡화를 판매하던 상점은 올 여름에 권리금도 포기하고 가게를 내놨다.
옆 건물에서 비슷한 품목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이웃 상인이 권리금까지 포기하고 자리를 뜬 사연을 묻자 "그양반이 잘 한 거지 뭐"라면서 "문 닫고 먹고놀든 다른 일을 하든, 할 게 있으니까 안 닫았겠는가.나는 그럴 능력이 안돼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50m쯤 떨어진 곳에서 트레이닝복과 스포츠양말, 각종 방한용구 등을 판매하는 점포 관계자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점포의 셔터를 가리키며 "나랑 여기서 20년을 버텼는데 얼마 전에 문을 닫아버렸네"라고 말했다.
장사의 속성상 성업과 폐업은 도미노와 같다. 의류, 잡화, 용구 등의 업종은 대부분 비슷한 업종끼리 나란히 붙어서 장사를 한다. 과당경쟁ㆍ출혈경쟁처럼 보이지만 고객의 선택 폭을 넓힐 수 있고 점포를 옮겨가며 추가 구매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장 곳곳에 빈 자리가 눈에 띄면서 이런 시너지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 이후 동대문에서도 사장 혼자 일하는 곳이 늘고 있다. 한 스포츠용품 도매업체 관계자는 "12월부터 1월까지가 스포츠 방한용품, 특히 패딩 류 판매의 피크라서 물건 정리하고 배송 관리하는 알바를 추가로 뽑곤 했는데 올해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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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과 달리 6~7명의 직원을 채용한 한 점포 관계자는 "저희 매장 특징이 이렇게 일손만 많이 들어간다"면서 "최저임금 때문에 올들어서 부담이 매우 커졌다. 장사를 접지 않으려면 하루 종일 박스를 정리하고 옮기고 해야돼서 어쩔 수가 없다"고 말했다.
동대문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동대문시장이 위기인 것은 맞지만 상인과 지자체가 상권 활성화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자정노력도 펼치고 있다"면서 "민관이 상권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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