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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눈송이처럼 흩어지는 '시간'에 대한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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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 달리는 파발마, 나는 화살! 이들은 가고 오는 세월에 대한 보편적인 은유(隱喩ㆍmetaphor)다. 세모(歲暮)로 향하는 길목에서 아직도 못 다한 일들이 많기에 괜스레 마음이 들뜨고 조급해진다. 젊은 산업 전사들은 최소한의 잠잘 시간과 휴식 시간도 얻지 못하고서 연애할 시간 그리고 사랑할 시간마저 빼앗긴 채 정신없이 살아간다. 중ㆍ장년들도 시간에 내몰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저렇게 부대끼며 살아간다. 노년들도 그저 '그날이 그날인' 나날들 속에서 거친 일들을 해내느라 힘에 부친다. 아니면 하릴없이 '시간 때우기'나 '시간 죽이기'를 한다. 더욱이 대부분의 직장인은 연말의 빠듯한 일상 속에서 '하고 싶은 일들'은 모두 뒤로 미루면서, 당장 '해야 할 일들'에만 빠져 '시간 관리'에 부산하다.

그러나 세월이 교차하는 이 시점에서 한 번쯤은 저 무심히 다가오고 지나가는 진정한 '시간의 정체'에 대해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을 모르고서야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가 시간을 거쳐 시간 밖으로 퇴장해야 하는 인생을 어찌 알겠는가! 시간의 무상함과 세월의 불가역성(不可逆性)과 존재의 유한성! 저 흘러가고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불인(不仁)한 침묵 앞에서 우선ㆍ대개 우리는 일상적 시간들의 안전 궤도 안으로 도피하곤 한다.
영원과 시간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us)마저 자신은 시간을 알지만, 누가 시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다고 실토했다. 그는 "시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위대한 역사적인 '시간론'을 완성할 수 있었다. 시간은 과연 있는지? 시간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 양화(量化)된 시간이 참된 시간의 모습인지? 시간성은 유독 인간에게만 있는 것인지?

일반적으로 그리스어 '크로노스(chronos)'는 과거에서부터 시작해 현재를 거쳐 미래로 진행되는 연장적 시간이다. 그러나 '카이로스(kairos)'는 미래로부터 현재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크로노스의 시간은 흘러가는 연대기적ㆍ계량적 시간이므로 새로운 것이 없다. 하지만 카이로스의 시간은 새롭게 임하는 창조적인 시간이다. 그것은 마음의 결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다. 저렇게 흘러가는 시간은 그 시간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사 가도록 장터에 진열된 상품과 같다. 따라서 시간의 장터에서 나만의 시간을 사서 기회의 시간, 즉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하루 24시간의 크로노스 중에서 내가 값을 치르고 사는 시간만이 '나의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지금 눈송이처럼 흩어지고 사라지는 시간들을 바라보면서 잠시 묵상에 잠긴다. 과거의 시간으로부터 오는 후회가 있고, 다가올 미래의 시간에 대한 불안이 있다. 지금 현재 느끼는 시간은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고 동요하게 한다. 그러면 이 흩어지는 시간 앞에 굴복해 "시간 이기는 장사 없다"고 위로하면서 시간에 끌려가는 수밖에 없을까? 내가 스스로 맞이하고 영접하는 시간들로 인해 나의 삶은 새로운 한 편의 이야기(서사ㆍnarrative)가 된다. 모름지기 나의 정체성은 내가 순간순간 써가는 이야기다. 이 계절에 파편화되고 사라지는 시간들을 한데 모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엮어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써나가 보면 어떨까!
강학순 안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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