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꿈, 찬란하게 피었을 근대미술의 꽃
국립현대미술관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 참담한 표정의 고종 앞에 미군 역관 임관수가 뉴욕타임스를 들고 섰다.
"금일신문은 8월 초닷새자 뉴욕타임스입니다. 미국의 뉴욕과 블란서의 파리 간에 자동차 경주가 열린다 하옵니다. 거의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대장정이라 만천하의 이목이 모두 집중되어…."
더욱 참담해진 표정의 고종이 말을 끊는다. "그게, 제일 큰 소식인가. 대한에 대한 소식은 없는가. 단 한 줄도 없는가"
"망극하옵니다. 태황제폐하"
-'미스터션샤인' 23회 中-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즉위식을 통해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 열강들로부터 국가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였다. 고종은 만국공법(萬國公法)을 따라 문명을 도입하고 자주국으로의 위상을 설립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중국과 일본에 국한됐던 외교 사신을 미국과 유럽에 파견하고 외국공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파리만국박람회에 참여한 것 역시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당당히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대한제국은 1900년 4월부터 11월까지 파리만국박람회에 참석했다. 애석하게도 대한제국이 참가한 마지막 국제행사였다. 이때 대부분의 프랑스 신문들은 한국관 화보나 사진을 싣지 않았다. 하지만 프랑스 잡지 '르삐 주르날'은 한 면에 한국관 화보를 넣었다. 경복궁 근정전을 축소해 만든 한국관 앞에 다양한 복장의 사람들이 거닐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계인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대한제국이 꿈꾼 자주국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에서는 사진과 인쇄기술의 발달로 신문과 잡지 같은 매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국주의를 향한 이권과 갈등의 충돌이 동아시아에서 첨예해지면서 서구의 관심도 증가했다. 대한제국의 수립과 파리만국박람회 참여, 고종의 강제퇴위와 한일강제병합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대사의 모든 장면을 대부분 타자의 손에 의해 생성됐다. 이를 통해 한국의 이미지가 정형화돼갔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대한제국의 미술-빛의 길을 꿈꾸다'는 그동안 조선시대의 우수한 미술 전통이 급격하게 쇠퇴해온 것으로 인식된 이 시기의 예술을 재조명한다. 미스터션샤인으로 촉발된 대한제국 시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회화와 사진, 공예품으로 확대할 수 있는 자리다. 제국의 몰락과 일제강점기가 아니었다면 찬란하게 피어났을 법한 한국 근대미술의 혼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당시 예술의 특징 중 하나는 신식문물인 사진에 대한 적극적인 수용이다. 1880년대 한국에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 어진이나 기록화 등 궁중회화 상당 부분은 사진이 대체해나갔다. 남성이 아닌 여성(황후)의 초상, 가족 초상 등 그동안 유교적 관념 아래 등장할 수 없었던 대상이 사진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이는 사진이란 신문물의 도입과 맞닿아 있는 달라진 시대상과 근대성이 반영된 결과다. 어진의 개념에도 변화가 불어온다. 어진은 왕조의 정통성과 왕의 유일성을 상기하며 일반인들이 함부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복제와 배포가 쉬운 사진의 도입으로 어진에도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치적 기능이 생긴다.
비단에 채색된 '고종 어진'은 1918년경에 촬영한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고종의 아들 영친왕이 일본에서 가지고 있던 것이다. 전통 초상화와 달리 전통 안료를 사용했음에도 유화처럼 섬세하고 화려하게 채색됐다. 배경에 휘장이 쳐 있는 점도 독특하다. 의복과 휘장에는 서양식 명암법이 두드러진다. 어좌의 용머리 표현도 전통방식이 아니다.
이처럼 대한제국의 예술은 조선시대부터 이어오던 전통에 중국, 일본, 서구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기법이 가미된 일종의 '하이브리드형 예술'이었다. 특히 궁중미술의 경우 규범성이 강하고 보수성이 짙은 만큼 대한제국 설립 후에도 조선 후기 전통이 지속됐다. 그러나 고종 시기에 이르러서 서양 및 일본 미술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화풍을 수용해 변화를 꾀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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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으로 12쪽의 큰 크기의 병풍인 '해학반도도'의 경우 조선 전통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채색과 금박을 활용해 구름과 복숭아 위를 나는 10마리의 학을 그렸다. 고종의 육순을 기념해 황실에 바쳐진 그림이다. 전통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고종의 '구본신참'(舊本新參·옛것을 근본으로 새것을 참고한다) 사상을 엿볼 수 있다. 1922년 도미타 기사쿠(1859~1930)와 야마나카 상회에 팔려 1927년 하와이 호놀룰루 미술관이 소장하게 됐다. 대한제국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녹아든 작품이다.
배원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한때 없었으면 좋았을 역사로까지 여겨온 대한제국 시기의 미술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전통은 급격하게 쇠퇴했고 일본과 서구미술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였다고 인식돼왔다"면서 "하지만 대한제국기는 근대 미술의 토대가 놓여졌던 미술사적으로 매우 유의미한 시대였다. 미술이 쇠퇴기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전통을 토대로 외부의 선진적인 요소들을 가미해 근대화로 나아가려는 시대의 흔적이다. 대한제국의 미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재해석했을 때 비로소 근대 시기 우리미술을 온전히 만들 수 있다"고 이번 전시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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