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구 신작 '조선, 철학의 왕국 : 호락논쟁 이야기'
조영석이 눈 내린 겨울날 한 선비가 벗을 방문해 담소하는 모습을 그린 '설중방우도(雪中訪友圖)'. '설중방우도'는 원래 송(宋) 태조 조광윤(趙匡胤)이 신하 조보(趙普)의 집을 방문해 나랏일을 의논했다는 일화를 조선화해 그린 그림이다. 조영석은 낙론의 지도자 김창흡의 문하에 있었기 때문에 그림 속 선비들은 호락논쟁의 당사자일 것으로 추측된다.
원본보기 아이콘매해 벌어지는 전투를 보면 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 제2 야당인 바른미래당, 여기에 민주평화당까지 이들의 이념 사이에는 태평양만큼의 간극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 좋은 말만 써놔서 그런 감도 있지만 각 당의 정강 정책은 70% 이상 유사하다. 민주당은 5ㆍ18민주화운동과 남북공동선언을, 한국당은 자유시장경제를 강조한 것 정도가 유의미한 차이다. "그 얘기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다"며 지지고 볶고 하는 것치곤 실제 집권했을 때 펼치는 정책도 큰 물줄기는 비슷하다. 다른 것이라고는 대북 정책 정도인데, 이마저도 박근혜 정부 시절 '통일대박론'을 떠올려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호락논쟁(湖洛論爭)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지만 16세기 이황ㆍ이이 등이 주도한 '사단칠정(四端七情)', 17세기 후반 왕실의 복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예송논쟁(禮訟論爭)'과 더불어 유학 왕국 조선의 3대 논쟁으로 꼽힌다. 사단칠정 이후 이황의 제자들이 대개 남인이 되고 이이의 제자들은 서인이 됐다. 이 때문에 사단칠정을 조선 붕당정치의 이념적 토대를 마련한 논쟁이라 한다. 그 후 남인에게 정치적 승리를 거둔 서인은 숙종 재위 중반부터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져 싸우고, 영조 대에 이르러 소론을 제압한 노론이 호론과 낙론으로 나뉘어 논쟁했다. 이 논쟁이 붕당정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호락논쟁이다. 크게 보면 성리학이지만 이들의 논쟁들은 작은 차이로 죽고 사는 게 갈릴 정도로 치열했다. 철학의 탈을 쓴 정치 대결인 적이 많았지만.
호락논쟁의 포커스를 인물에 맞춰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그 정점에는 송시열이 있다. 많은 제자 중에서 충청도의 권상하와 서울의 김창협이 가장 빼어났는데 이 둘이 호론과 낙론의 시조 격이다. 이들의 이름이 호론, 낙론인 이유는 충청도의 다른 이름이 '호서(湖西)'였고 서울의 별칭이 '낙하(洛下)' '경락(京洛)'이어서였다. 호론 쪽이 더 강경하게 정통 성리학을 추구했고, 외래 문물과 다양한 이론을 접하기 쉬운 서울에 본을 뒀던 낙론 쪽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호락논쟁의 주제는 크게 세 가지였다. '미발(未發) 때의 마음의 본질'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서로 같은지 다른지' '성인(聖人)과 범인(凡人)의 마음은 같은지 다른지'가 그것이다. 미발 논쟁의 경우 '마음의 본질' 탐구로 비전공자가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내용인데, 저자도 잘 아는지 서문에서 홀수 장은 역사 이야기가 뼈대이고 짝수 장은 철학이나 이론이 주라고 설명하며 독자에게 관심 가는 부분만 골라서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 중 가장 치열했던 논쟁은 인성과 물성에 관한 논쟁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주제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청나라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주된 논쟁이었다. 유교의 뿌리인 중화를 멸망시킨 오랑캐가 '청나라의 정의'였기에 이 타자를 우리 안에서 어떻게 소화할지의 문제는 조선의 성리학 전체를 흔드는 중요한 주제였다.
호론과 낙론 중에서 오랑캐에게 더 강경한 것은 역시나 호론 쪽이었다. 호론의 사상적 지주인 한원진은 '삼무분설(三無分設)'을 통해 원나라에 협조한 허형을 유학자로 인정한다면 이는 중화와 오랑캐의 분별을 없애자는 것이기에 조선의 유학에 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 삼무분설이 한원진이 낙론들에게 보낸 경고장이었다고 말한다. 낙론은 허형의 공적을 인정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낙론 최고 사상가인 김창협의 형제 김창업이 '연행일기'를 통해 청나라로 갔던 사신들이 편견으로 잘못 전달했던 정보들을 바로잡는 등 청나라에 대해 더 온정적이었다.
논쟁이라는 녀석은 상대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계속될수록 원래 관철하려 했던 이상은 저 멀리 날아가고 논쟁 자체만 남아 관성적으로 비판을 위한 비판, 싸움을 위한 싸움만 남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현 정치 상황과 마찬가지로 호락논쟁의 마지막도 그러했다. 저자는 "논쟁 처음의 진지함과 열의, 학파의 출현과 논쟁의 과열, 정파와의 결탁과 변질. 조선에서의 논쟁 또한 철학 밖으로 번져나갔다. 동양의 고매한 유학자들 역시 논쟁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었던가" 하고 개탄한다.
이경구는 왜 지금 다시 호락논쟁을 꺼내 들었을까. 그는 "우리에게 인공지능(AI) 등 과학이 더 발달한 미래가 다가올수록 고전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은 더 치열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우리의 앞에는 가깝게는 난민과 다문화, 멀게는 AI라는 물(物)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숙제가 놓여 있다. 300년 전 조선의 호락논쟁, 이들의 '인성ㆍ물성 논쟁'을 가장 치열하게 수행해야 할 세대는 아마 우리일지 모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82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그려진 미래가 곧 다가올 2019년이다. 영화 속 AI 탑재 인조인간 프리스는 자신을 만든 사람 중 하나인 세바스찬을 만난 자리에서 데카르트의 명제를 읊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근형 기자 ghlee@
이근형 기자 gh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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