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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책과 저자]김미경,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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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 문화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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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은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오랫동안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의 한국문화원 직원, 아름다운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월급생활자로 지낸 세월이 27년이다. 그러던 그가 '전업 화가'가 되어 전시를 하고 책도 써낸다. 지금 김미경은 화가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과정이 2015년 2월 24일자 〈아시아경제〉에 실렸다. 김미경은 첫 전시를 하면서 〈아시아경제〉 문화부에서 미술·전시를 취재하던 오진희 기자와 대담했다. 이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한겨레신문〉에서 일할 때 만평가 박재동이 만든 사내 그림반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말 못 그렸다.”

김미경은 박 화백의 칭찬에 용기를 얻어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뉴욕에서 지낸 7년 동안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첼시갤러리를 가게 드나들듯 다녔다. 그림을 엄청나게 많이 봤고, 화가 친구들도 많았다. 그때까진 '먼 훗날 화가가 될 테야'라고만 속으로 생각했지, 정말 전업화가가 될 각오는 없었다. 그런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서촌을 만났을 때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김미경 씨는 대학시절 서촌에서 잠시 자취를 했다. 그때는 낡고 세련되지 못한 동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감나무, 집들, 오래된 책방, 정선이 그린 많은 장소들과 골목길, 인왕산이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 한 시민단체에서 연 미술교실에 들어가 다시 그리기를 훈련하면서 아름다운 서촌을 다 담고 싶었다. '페이스북에 그림을 올렸고, 응원의 소리들이 커졌다.'
“동네 주민들이 자기네 옥상에 와서 그리라고 댓글을 달아줬고, 서촌 뿐 아니라 북촌, 용산, 지방에서까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와서 그려 달라고 해줬다.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 있는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참 좋아하더라.”

오진희 기자는 당시의 김미경을 깔끔하게 점묘해 나갔다. ‘생생한 서촌의 길거리ㆍ옥상 화가가 되면서 그에게는 그림만큼 소중한 인연이 많아졌다. 길에서 그리고 있을 때면 매실차나 쑥떡, 한과 등을 내놓는 인심 좋은 이웃사촌들, 서촌지역문화 살리기를 위해 함께 손 잡아 달라는 주민들이다. 옥상에서는 빨래 널러 온 이들, 기와집을 수리하는 목수와 미장이를 가까이서 보고 슬쩍슬쩍 눈도 마주친다….’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한겨레출판.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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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이 새로 낸, 화가의 세 번째 책 제목은 그의 그림과 언어가 그렇듯 진솔함을 담았다. ‘그림 속에 너를 숨겨 놓았다’. 제목을 정한 사연을 그의 글에서 짐작한다.

“동네 한 모자 집 간판에 ‘나는 아직도 너를 내 시 속에 숨겨놓았다(I still hide you in my poetry)’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중략) 좋아하는 마음을, 열정을, 그림 어딘가에 꽁꽁 숨겨 놓는 재미가 솔찬하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추억이, 나를 그리게 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물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게 하고, 그리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지기도 하는구나!”(61쪽)

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 김미경의 그림에 반한 사람들의 공감은 같은 샘에서 우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시대의 대가수 양희은은 이렇게 썼다.

“김미경 작가가 그리는 모든 풍경이 20대 내 눈에 담았던 것과 같다. 암 수술 후 몇 발짝 떼는 연습을 한 곳도 옥인아파트 옥상이어서 서촌의 지붕들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였다. 나의 어린 날을 가슴에 들여놓고 싶어서 그림을 가졌다. 현관과 거실에 걸어놓고 하루에도 여러 번 눈길을 준다. 아련하면서도 애틋한 내 청춘, 기댈 곳 없던 가여운 나를 안아준다!”

출판사에서는 이 책을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 서촌 옥상화가의 '그림 작황 보고서', ‘그림 성장 에세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무엇으로 그림을 그리는가?’라는 질문에 ‘그리움’ ‘시간’ ‘추억’ ‘꽃과 나무’ ‘자유’ ‘몸’이라 답을 내놓고 지난 5년 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쩌다 옥상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좋아하는 사람과 그 기억, 추억과 사물, 그리고 자연이 훌륭한 동기부여가 되었음을, 딸과 함께 나눈 정치, 사회, 페미니즘 이야기가 그림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미술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화가로 살아갈 수 있었던 구체적인 과정과 자유와 꿈, 기쁨 등 (후략)”

서촌은 나의 거처에서 멀지 않다. 인왕산 길을 걷다가 수성계곡으로 내려가거나, 커피나 포도주 마실 약속을 하고 골목을 걷다가 김미경을 마주칠 때도 있다. 나는 화가를 알지만 화가는 나를 모르니까 재빨리 기억 속에 쟁여 두고 지나친다. 그는 카페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 내가 볼 때는 늘 웃고 있었다.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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