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다르다. 정부는 '대기업이 잘돼 중소기업이 아사(餓死)지경에 몰렸다'라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낮은 경제 성과가 대기업의 횡포와 전횡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익공유제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이윤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나눌 것인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마다 서로 다른 협력업체의 매출 및 영업이익 기여도를 측정해 이익을 배분한다는 발상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사회주의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국가의 계산 능력'을 과대평가한 것이다. 국가에는 이해상충을 해결해줄 지식과 능력이 없다. 자유 계약에 의한, 즉 시장을 통한 이해 조정이 최선의 길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는 직물업의 발전으로 양모 수요가 늘자 지주들이 양치기를 위해 농민들을 내치는 '인클로저' 운동을 사회적 배경으로 한다. 극 중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히슬로다에우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재산이 소수의 사람에게 한정돼 있는 한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현실의 비참한 상황이 전개된 원인이 인간의 탐욕일 것인데, 탐욕을 낳은 근본적 원인인 사유재산제와 화폐제도를 폐기하고 노동을 사회적 책무로 부과하면 모든 사람이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이에 모어가 정면으로 반박한다. "모든 것을 공유하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잘살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일을 안 하려고 할 텐데 어떻게 물자가 풍부할 수 있겠는가. 이익을 얻을 희망이 없으면 자극을 받지 못한다. 열심히 일해 얻은 것을 합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일손을 놓을 것이다."
극 중 인물 히슬로다에우스는 '난센스(Hythlos)'와 '나눠주다(daien)'의 합성어로 '허튼소리를 퍼트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토마스 모어는 간접적으로 히슬로다에우스의 논리에 반대를 표하고 있다. 평등론자들이 유토피아를 그들의 이념적 지지대로 삼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중소 협력업체가 위기 상황이라면 그들의 경쟁력을 제고할 방안을 찾는 것이 정도다. '사적 자치'로서의 성과 공유가 아닌 '국가가 주도해 이윤을 공유하는 문명국가'가 있다면 공유하라. 협력이익공유제는 그들의 독선과 무지를 드러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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