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신발 끈을 매려고 쪼그려 앉아있던 10살 초등학생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주거 시설 안에서 차량으로부터 어린이 등의 활동을 보호할 수 있는 관련 법은 여전히 국회에 머물고 있어 조속한 법 처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사고 과정에 대해 B 군이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다가 혼자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이 차량 블랙박스에 찍혀있어 사고 당시 B 군이 신발 끈을 묶고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A 씨에 대한 처벌 혐의가 마땅하지 않다는 데 있다. 경찰은 A 씨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입건해 조사 중이지만, 아파트 내 도로에서의 사고는 아직 일반 형사처벌 수준에 그친다. 아파트 내 안전 강화 및 처벌 규정을 마련하기 위한 법안들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지만, 국회 법안 통과가 아닌 아직 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3월 경찰은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에 출연해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에 ‘도로 외의 구역에서 보행자 발견 시 운전자에게 서행·일시정지 할 의무’를 부여하는 조항과, 제156조(벌칙)에 이를 위반할 시 제재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와 같은 ‘도로 외 구역’에서 보행자를 발견했을 때 운전자에게 서행·일시 정지를 할 의무를 부여하는 ‘보행자 보호 의무’ 조항의 신설, ‘도로 외 구역’에서 보행자 보호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낸 가해 운전자를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국회에 머물고 있다.
이 사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여전히 교통사고가 발생, 사상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오전11시15분께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플라스틱 수거차량이 후진하다 차량 뒤편에 있던 50대 여성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치어 숨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아파트 단지 내 보행 안전이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가장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는 내 집 앞이 가장 위험하다고 느끼고 있는 긴급한 상황이다. 아파트 단지 내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으로는 차량의 과속주행을 가장 많이 꼽았다.
지난 2015년 삼성화재 부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아파트, 대학 등 도로 외 구역 위험실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국 교통사고 접수건의 16.4%가 도로가 아닌 구역에서 발생했다.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는 25만1810건으로 전체 교통사고의 16%에 달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도로 경우는 국내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모든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에 대한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 않아 사고유발 행위에 대한 단속 및 처벌이 불가한 상황이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는 사유지여서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도로교통법 12대 중과실(△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제한속도보다 20km 과속 △앞지르기 방법 위반 △철길 건널목 통과방법 위반 △횡단보도 사고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승객 추락방지 의무 위반 △어린이 보호구역 안전운전 의무 위반 △화물 고정 조치 위반(신설조항) 등)에 포함되지 않는다.
12대 과실은 가해자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사고사례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 법 근거가 없어 피해자는 사실상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셈이다.
반면 다른 나라의 경우 아파트 단지 내 사고 상황에서 일반 도로교통법을 적용 처벌하고 있다. 미국은 아파트 등 주거시설 내 도로도 일반 도로교통법을 적용해 관리하고, 독일은 주거지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속도를 제한한다.
한편 현재 발의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안’ 내용은 아파트 단지, 대학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의 통행로를 도로에 포함한다.또 해당 시설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가 지방경찰청장이나 시장의 지시를 받아 횡단보도와 교통안전시설(신호기 및 안전표지)을 설치·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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