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민족의 양심을 가진 이라면 모든 차이를 넘어 가슴 벅차게 김 위원장의 서울 방문을 환영할 준비를 해야 한다"며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응당 뜨겁게 열렬히 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분단 적폐 세력이 감히 준동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의 진단은 오판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민족우선'의 김정은 칭송행사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상실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족주의는 계급 투쟁의 장애 요소로 인식됐다. 과거 민족주의를 배격했던 이유다. 이런 인식에는 북한도 예외일 수 없었다. 1957년 김일성이 '민족주의를 배격한다'는 선언은 같은 맥락의 산물이다. 그러나 1980년대 사회주의 몰락 과정에서 북한은 소련과 중국 및 동구권의 체제 변환의 바람을 차단해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적 선전선동구호가 절실했다. 그래서 1986년 김정일은 선전구호로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제시했다.
조선민족제일주의는 1990년대 접어들면서 '민족공조', 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감성적 외피로 포장됐다. 그리고 '감성적 민족공조'는 대남통일전선의 구호로 악용되면서 우리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모든 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감성적 호소가 주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족공조는 반미자주투쟁의 중심구호로 작동하면서 '남남갈등'이라는 심각한 이념 갈등을 수반했다. 그래서 이번 백두칭송위원회의 '도발(?)'은 결코 예사로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흔히 민족은 같은 언어, 혈통, 문화를 공유한 감성적 집단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민족이 역사적이고 실천적 주체였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감성적 민족 개념은 분명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민족에서 사람의 가치 또는 국가의 가치관이 함께 침전된 요소들을 제외 시킨 결과이다. 시민혁명과 함께 등장한 유럽의 민족은 자유와 평등의 원리에 기초해 주권 재민의 개념이 포함된 시민적 민족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시민적 민족은 종족, 언어, 혈통 등의 동질성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과 동의가 민족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감성적 민족과는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시민적 민족은 단순히 '종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의 명분인 '국민'을 의미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국민이 민족이고 민족이 국민이라는 의미다.
지금 한반도에서 회자되는 민족 공조는 문화, 언어, 혈통 등의 종족적 요소에 입각한 감성적 민족이다. 감성적 민족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심하게 훼손한다는 점에서 극복의 대상이지 결코 공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감성적 민족 공조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북한의 전체주의체제의 이질적 문제를 올바로 볼 수 없도록 한다는 점에서 결코 민족공조에 의한 연방제는 수용의 대상이 아니다.
'조선민족제일주의'에 기반한 감성적 민족 공조는 자유와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감성적 민족 공조에 매달릴 시기가 아니라 시민적 민족의 부활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따라서 정부는 시급히 감성적 민족 공조의 위험성을 차단할 장치 마련과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만 한다.
조영기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통일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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