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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의 벽]①대회는 늘었지만…30년 전으로 퇴보한 ‘한국 마라톤’

최종수정 2018.11.06 14:49 기사입력 2018.11.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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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행사 늘었지만, 기록은 ‘빈곤’…리우 올림픽 기록은 故 손기정 선수보다 뒤져
올림픽 앞둔 일본, 마라톤 신기록에 10억 내걸자 올해만 2차례 기록 경신

1994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 황영조 선수가 결승점을 골인하는 모습. 사진 = Olympic Youtube

1994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마라톤에 출전한 황영조 선수가 결승점을 골인하는 모습. 사진 = Olympic Youtube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10월 11월은 대표적인 ‘마라톤의 계절’로 불린다. 지난 주말에만 13개의 마라톤 대회가 개최되며 전국 각지에서 가을빛 레이스가 이어진 가운데 대회를 휩쓴 우승자들의 기록과 그 국적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치러진 JTBC 서울마라톤에서는 2시간 8분 11초로 1위를 차지한 아세파 멩스투 니게우를 포함한 2등과 3등이 모두 에티오피아 선수였고, 지난달 29일 개최된 춘천 국제마라톤 또한 2시간 08분 50초를 기록한 1위 아레도 쉬페라 탐루와 2위 아둑나 타켈레 비킬라 모두 에티오피아 선수였고 3위가 케냐 선수였다. 아프리카 선수 위주로 재편된 세계 마라톤계의 흐름을 한국 대회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현재 마라톤 세계 기록은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지난 9월 베를린 마라톤에서 기록한 2시간 1분 39초다. 마라톤이란 종목이 생긴 이래 인류가 2시간대에 접어든 것은 불과 100년 남짓. 1967년 후쿠오카 마라톤에서 호주의 데릭 클레이턴(2시간 9분 36초)이 2시간 10분대의 벽을 깬 이래 2003년 케냐의 폴 터갓이 2시간 4분 55초를 기록하며 5분을 줄이는 데 36년이 걸렸다.

이후 2014년 케냐의 데니스 키메토가 베를린 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 2분의 벽을 킵초게가 2시간 1분대로 내리는 데엔 4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이제 인류에겐 기적에 가까운 ‘2시간의 벽’을 깨는 일만 남은 상황. 2시간 4분대 진입 이후의 기록 경쟁은 전적으로 케냐와 에티오피아 선수들이 주도하고 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전한 심종섭 선수가 결승점 골인 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마라톤 국가대표로 출전한 심종섭 선수가 결승점 골인 후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갈수록 뒤처지는 한국 마라톤, 故 손기정 보다 느린 기록?
모제스 타누이를 시작으로 케냐 선수들이 연이어 우승을 기록한 보스턴마라톤에서 케냐의 최다 연속 우승 신기록을 깬 선수가 있었다, 바로 2001년 2시간 9분 43초를 기록한 이봉주가 그 주인공. 앞서 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에 이어 50년 만에 한국에 우승을 안긴 이봉주의 성과는 당시 케냐의 독주를 막아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앞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황영조와 4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봉주의 영광 이후 한국 마라톤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뿐이었다.

2009년 이봉주의 은퇴 후 한국 남자 마라톤 기록은 2시간 10분대에 머물러있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선 완주한 140명 중 한국 대표 손명준이 131위(2시간 35분 21초)와 심종섭이 138위(2시간 42분 42초)를 기록하며 충격을 안긴 바 있다. 이는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故 손기정 선수가 세운 2시간 29분 19초보다 처지는 기록으로 명백한 한국 마라톤의 퇴보를 방증했다.

반면 한국 여자 마라톤의 ‘간판’으로 떠오른 김도연은 지난 3월 동아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41초를 기록하며 21년 만에 여자 마라톤 한국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세계 최고 기록인 영국 폴라 래드클리프의 2시간 15분 25초와는 아직 10분 가까이 차이가 나지만 꾸준히 좋은 기록을 내며 앞으로의 성장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마라톤 휩쓰는 ‘아프리카의 힘’ 그 배경은?

육상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100m 달리기 세계기록은 1위부터 5위까지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9초 58)와 역시 자메이카 대표 아사파 파월(9초 74)간 경쟁의 연속이었다. 종전까지 이어진 미국과 캐나다 국적의 아프리카 선수 간 대결에서 볼트라는 걸출한 선수의 등장으로 자메이카의 기록 독식이 시작됐다.

육상 전문가들은 해발 2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유년기 훈련과 생활을 지속해온 아프리카 선수들의 단련된 심장과 기초체력이 높은 기록을 가능케 했다고 설명한다.

올림픽에서 아프리카 흑인으로 첫 금메달을 기록한 이 역시 1960년 로마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2시간 15분 16.2초)였다. ‘맨발의 영웅’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또 한 번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두 번째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단지 고지대 환경이 마라톤에 유리한 절대적 이유일까? 최근 세계 마라톤 기록을 새로 쓰고 있는 킵초게를 위시한 상위 랭커 4명은 모두 케냐 선수다. 표고 높이로만 따지면 케냐보다 탄자니아나 에티오피아가 더 높다. 그런데도 최근 10년 사이 두각을 나타낸 케냐만의 저력은 무엇일까?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분 39초로 세계 기록을 갈아치운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사진 = AP/연합

지난 9월 16일(현지시간) 베를린 마라톤에서 2시간 1분 39초로 세계 기록을 갈아치운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 사진 = AP/연합


타고난 신체조건에 더해진 체계적 훈련, 그리고 간절함

42개 민족이 경계를 이루며 생활하는 케냐에서 달리기에 뛰어난 부족은 해발 2000m 이상 고지대에서 생활하는 칼렌진, 키쿠유, 키시이, 캄바가 꼽히는데 케냐 마라톤 선수의 7~80%가 칼렌진족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1위 킵초게와 2시간 5분의 벽을 깬 폴 터갓이 대표적인 칼렌진족 선수다.

케냐의 이 같은 성과에는 이탈리아 심장전문의 가브리엘 로사가 도입한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과 캠프의 공로가 있었다. 1991년부터 로사 박사의 지휘하에 뛰어난 신체조건의 칼렌진족 유망주들이 고지대에서 훈련을 시작했고, 이들 중 한 명인 모제스 타누이가 1996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하면서 차츰 두각을 나타냈다.

동년배 같은 부족 청년의 성과에 자극받은 칼렌진족 청년들이 모여들자 마라톤 캠프가 속속 생겨나기 시작했고, 타고난 신체조건과 고지대 환경, 여기에 체계적 훈련과 엄격한 단체생활이 자리 잡으면서 비슷한 신체조건을 두고 경쟁했던 에티오피아와 탄자니아와의 격차는 점차 벌어져 오늘날 케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현재는 세계 유수의 스포츠 브랜드들과 유력 에이전트들이 앞 다퉈 케냐에 캠프를 열고 칼렌진족을 중심으로 구성한 주니어 캠프 운영을 통해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여기에 극심한 양극화와 청년 실업률 속 마라톤이 한 줄기 희망으로 부상하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2016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케냐의 공식 실업률은 10년 넘게 9% 이상을 유지하고 있고, 여기에 도시 거주 만 34세 이하 청년 실업률은 16%에 달한다. 주요 산업인 농업과 관광업은 한정된 수입과 일자리에 묶여있는 반면 달리기는 단시간 내에 부와 명예를 안겨주기 때문에 재능 있는 소년과 청년들은 마라톤을 선택해 오늘도 초원을 달리고 있다.

한편 2020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은 과거 세계 마라톤계를 석권한 1966년을 꿈꾸며 마라톤 재건에 나섰다. 일본 육상계는 풀코스 마라톤 신기록을 세운 선수에게 1억엔(약 10억원)의 포상금을 내걸었고, 이에 올해 2월과 10월에 일본 신기록이 경신되는 성과를 거뒀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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