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 못했지만 "창업 DNA 생겼다"
삼성전자 입사 후 기획파트 근무
갤럭시 기획 맡으면서 창업병 도져
국내 1위 원어민 회화앱 튜터링
월매출 30% 성장, 12월엔 10억원 돌파
"창업자엔 아이템 향한 헌신 필요해"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여기, '창업병'을 이기지 못해 억대 연봉 받으며 잘 다니던 삼성전자를 관두고 월급 10만원짜리 사장의 길을 택한 이가 있다. 한동안 옷 고를 시간이 아까워 검정바지만 쟁여 입고, 운동할 시간이 모자라 매일 출근길 계단을 올랐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튜터링의 김미희 대표 이야기다. 튜터링은 국내 1위 원어민 회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입자가 60만명에 이른다. 월매출은 30%씩 성장해 올해 12월 10억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29일 서울 중구 서울역 근처 위워크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가 창업병을 앓기 시작한 때는 무려 십수년 전인 대학 시절이다. '광고쟁이'를 꿈 꾼 그는 스스로 "광고에 미친 대학생이었다"고 떠올렸다. 김 대표는 마케팅을 전공하고 시각디자인을 부전공했다. 직접 광고를 만들어보고 싶어 남들 어학연수갈 때 휴학하고 6개월간 하루 12시간씩 웹디자인을 배웠다. 그리고 2004년 대학 3학년 때 '화이트페이지'라는 작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종의 1인 창업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 웹디자인 붐이 일었을 때인데, '국내 최저가 최고 속도'를 내걸고 소규모 광고일을 시작했죠. 일감을 수주받아 내 마음대로 만들었어요. 창작욕구를 실용적으로 써먹은 셈이죠."
김 대표는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바라던 마케팅ㆍ광고 대신 상품기획 일을 하고 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삼성전자가 지금은 세계 1위 스마트폰이 된 '갤럭시'를 출시하기 전 전사적 인재 모집에 나선 것이다.
"모바일에 관심이 있는데다 웹디자인 기술도 남아있어서 끌렸죠. 그렇게 갤럭시의 사용자경험(UX) 디자인(아이콘 구성과 화면 배치 등)을 시작했습니다. 사용자를 관찰하고 조사해 반영하는 통찰력이 중요한 일이었죠."
4년 뒤 갤럭시 콘텐츠ㆍ서비스 기획까지 맡게 되자 김 대표의 창업병이 도졌다. 아이디어는 무수히 샘솟는데 회사가 이를 다 받아주지 못하니 생긴 일이었다. 튜터링 역시 사내 공모에서 떨어진 작품이었다.
"스스로 '마이너스의 손'인 줄 알았어요. 챗온, 삼성 허브, e북…. 굉장히 많은 서비스가 출시되고 없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망하는 걸 피할 수 있을까' 많이 생각했습니다. 튜터링이 망하지 않고 지금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때 얻은 실패의 경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김 대표는 반복되는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대기업의 조직체계'를 꼽았다.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스타트업만의 비즈니스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대기업은 재능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지만 빠르게 협업할 수는 없는 구조예요. 디자이너ㆍ개발자ㆍCS운영팀이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하는데 그게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문제 해결을 반복하며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스타트업과 달리 처음부터 회사의 목표치와 고객의 기대치가 너무 높고요. 결국 출시가 늦어지고 말죠."
김 대표는 육아 휴직 이후 '채움'에 대한 갈망과 창업병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카이스트 MBA로 향했다. 그는 "창업 아이템을 구체화하고,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때도 튜터링을 꼭 품고 있었다. 그는 "아무리 기다려도 튜터링과 같은 서비스가 나오지 않았다"며 "결국 내 손으로 문제를 풀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튜터링의 출발은 김 대표의 오랜 '페인(pain) 포인트'였다. 영어회화는 학창 시절이나 직장 생활을 할 때 그에게 늘 풀지 못한 숙제였다. 하지만 영어학원을 다니기에 바빴고 1 대 1 과외는 비쌌다. 전화영어는 콘텐츠가 한정적이었고 온라인영어는 상호작용이 부족했다. 그렇게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튜터와 회원을 이어주는 튜터링이 탄생했다.
"창업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자가 아이템에 대해 헌신할 애정이 있느냐입니다. 내 인생의 열정을 쏟아낼 아이템이 아니라면, 그저 트렌드를 좇은 아이템이라면 반대입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창업자의 페인 포인트가 절실히 필요하죠."
국내 스타트업계에는 여성 대표가 흔치 않다. 10명 중 1명 꼴이다. 김 대표는 "여성들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전문성이 뛰어나지만 위험을 두려워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성향을 가졌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신은 사업가입니까'라는 책은 저더러 사업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절망했죠. 그런데 '오리지널스'라는 책을 보니 반대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위험을 회피하는 사람들의 승률이 오히려 30% 높다.' 희망이 생기더군요. 여성도 충분히 성공한 창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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