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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초대석]차상균 "혁신 속도 너무 느려…전략 판단할 주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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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AI 권위자…"리더십 부재가 한단계 성장 걸림돌"
"중국의 혁신속도는 우리를 능가해"

차상균 서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차상균 서울대 교수./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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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기획재정부 혁신성장본부가 이달 초 가진 전문가 초청 강연은 의미심장했다. 혁신성장본부는 혁신의 방향을 가늠하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강연을 개최하는데, 이날 강연은 정부가 늘 강조해오던 '디지털 패권과 4차산업혁명'이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강연자는 인공지능(AI)와 빅데이터 분야의 권위자로 알려진 차상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였다.
차 교수는 최근 가진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에서 강연자로 초청한 것에 대해 "(정부도) 이제 알려고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디지털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만들기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 추진에 대한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강연을 듣고 실행으로 옮기려면 정치권도 움직여야 하는 등 시간 많이 걸린다"면서 "국회가 (4차 산업혁명으로의 변화가) 과연 표(票)에 얼마나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혁신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차 교수가 지적한 우리나라 혁신의 가장 큰 문제는 '속도'다. 그는 주관심분야인 중국의 4차산업 발전 속도를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의 '거북이 속도'를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 관료들을 상대로 한 프레젠테이션 발표 자료를 꺼내보이며 "중국의 중안보험은 창립 4년만에 100억개의 보험계약을 맺었고 중국 상하이에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벅스 매장이 자리잡고 있다. 알리바바는 인공지능스피커 100만개를 불과 9시간만에 판매했다"고 설명했다. 4차 산업혁명의 쌀이라는 빅데이터를 활용한 판매전략이 결합한 결과다. 차 교수는 "중안보험 같은 회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과연 우리 보험사들은 얼마나 경쟁력 있게 대응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속도와 관련한 개인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현재 차 교수는 서울대 빅데이터센터 원장을 겸하고 있는데 빅데이터 분야 전문대학원을 만드는데 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뛰어다녀서 빅데이터 대학원을 새로 만들면서 전임교수 15명 채용에 대한 예산을 받았다. 이에 대한 예산은 15억원이 안된다. 대학원 설립은 내후년인데, 결과적으로 추진에서 대학원 설립까지 5년이 걸렸다. 이 기간이면 회사 두 개는 만들 수 있을텐데. 미국 주립대학인 UC버클리도 답답하다고 하는데 우리보다는 빠른 것 같다."

또 다른 일화도 소개했다. "한 모임에서 '2000억원짜리 펀드를 만들어 회사에 투자해보자'고 제안하니 '그걸 언제 만드냐'는 얘기만 들었다"면서 "언제 키워 언제 돈 버느냐는 게 대한민국의 속도"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혁신에 대한 속도가 뒤떨어지는 이유와 관련해 그는 "정부, 국회, 대기업이 과연 우리나라를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 절박하게 생각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득권을 가진 집단이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빅데이터 문제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한계에 대해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 주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어떤 분야를 진중하게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정부 예산이 전략적으로 투입돼야 하는데, 좀비기업이든 뭐든 들어와서 자기 것을 하나씩 받아가야 조용해지니 결국 예산이 다 쪼개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정작 필요한데 들어갈 돈이 부족해지니 국가가 강력하게 뒷받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차 교수는 "4차산업혁명 기본이 되는 좋은 소재를 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모든 분야를 혁신해서 선도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거기에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현재에서 다음으로 넘어가는 기회를 놓친 것 같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결국 일자리는 자동화로 줄고 새로운 일자리는 나오지를 않으니 갈 데가 없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었다"며 "우리나라는 그 고리에 이제 걸쳐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차 교수는 중국의 혁신을 언급하며 타들어가는 속내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중국을 애써 외면하지만 거대한 바닷물이 우리의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있는 형국"이라면서 "자율주행차도 그렇고 중국이 AI반도체를 밀고 있지만 우리는 메모리반도체 하나만 붙잡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최근 영국의 CPU기업을 중국 국영펀드가 사들였다는 점을 전하면서 "미국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할 건 다했다. 빅데이터 AI규제가 없으니 속도는 미국보다 더욱 빠르다"고 평가했다.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구호가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 아니겠냐"고 물으니 차 교수는 식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이제는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유회사가 전력회사 인수할 수 있나. 이런 규제라면 모를까. 규제를 깨려면 아예 패러다임을 깨는 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우리의 규제혁신의 초점은 너무 지엽적"이라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대신 규제를 넘어 혁신의 주체인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규제만 해결되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일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혁신할 재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은 사람이 한다. 옛날 사람을 모아 옛날 식으로 풀어준들 무슨 소용이 있나. 우리는 너무 규제 해소에만 집착하는데, 어떻게 끌어내 시장에서 꽃이 피도록 하느냐는 부분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차 교수는 우리나라의 인재 키우기 노력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창업시켜 성공하도록 하려면 3~4년 동안 연구비 10배 넣어줘서 성공시켜야 한다. 그 이후 인수합병(M&A)을 하든지, 아니면 대기업이 사들이는 그런 성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우리가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마무리에 그는 또다시 중국 얘기를 꺼냈다.

"칭화대 부총장이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는 이 때까지 팔로워였다. 하지만 리더가 되길 원한다'고 말이다. 우리나라는 그런 목표를 들어주는데도 없다. 중국은 공산당이지만 평등하지는 않다." 차 교수의 마지막 말이 주는 울림이 컸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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