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1921년)'는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단편소설이다. 식민지 문인의 고뇌하는 모습을 담았다. "내가 술을 권하는 것은 화증도 아니고 하이칼라도 아니요. 이 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이 조선사회란 것이 내게 술을 권한다오. (중략) 그저 이 사회에서 주정꾼 노릇밖에 없어." 문인들은 대체로 술을 많이 마신다.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만이 아니다. 문학 활동이 주로 작가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이어서 술자리는 그들이 현실을 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름을 알린 문인들은 특정한 술집을 정해놓고 거의 매일 드나들며 사람들과 교류했다. 술에 취해 비감했을 모습은 당시의 퇴폐적 풍조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설움을 공감하게 한다. 이를 글로 풀어쓴 현진건도 술을 많이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아까운 나이에 요절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술의 죄가 크다. 그와 함께 한국 근대 단편소설문학을 대표하는 김동인 또한 술을 가까이 했다. 염상섭, 이효석, 조지훈, 박목월 등 이른바 종로통의 대폿집파와 달리 다소 고급술집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라 경덕왕 시절 백제 부여 사람 아사달은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울 석공으로 뽑혀 서라벌로 간다. 그곳의 귀족 유종의 딸 주만은 아사달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아사달은 부여에 두고 온 아내 아사녀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주만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주만을 사모해온 금성의 훼방으로 두 사람의 사랑은 위협 받는다. 한편 유종은 정적(政敵) 금지의 아들 금성의 청혼을 거부하기 위해 주만을 경신과 혼약시킨다. 그 무렵 부여에서는 3년 넘게 남편의 귀향을 기다린 아사녀가 아사달의 연적이었던 팽개에게 겁탈당할 위험에 처한다. 아사녀는 고향집으로부터 도망쳐 아사달이 있는 서라벌로 온다. 아사달은 석가탑을 완성한다. 그러나 주만은 아사달과의 부정한 행각이 유종에게 발각되면서 화형을 당한다. 아사녀는 탑이 완성되면 영지(그림자 못)에 그 모습이 비칠 것이라는 중과 뚜쟁이의 농간으로 아사달을 만나지 못한다. 아사달이 귀인의 딸과 결혼했다는 소문을 사실로 여기고서 영지에 몸을 던지고 만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아사달은 주만과 아사녀, 두 여인을 합하여 원불 조각을 새기고서 자신도 물에 빠져 죽는다.
김병길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는 저서 '우리말의 이단아들'에서 이 소설에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설화 혹은 전설을 모티브 삼아 탄생한 역사소설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민족문화의 한 원형으로서 고대 신라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했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가치가 빛난다"고 썼다. 그는 민족혼을 불어넣으려는 시도에 가장 주목했다.
실제로 현진건은 일제와의 타협을 끝까지 거부하고 문인으로서 지조를 지켰다.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서 우승한 사진을 신문에 게재하면서 일장기를 지워 1년 동안 수감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김동인은 현진건과 달리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됐다. 이에 따르면 그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만들어진 친일 문인단체 조선문인보국회에서 간부로 활동했다. 1939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을 방문해 전지(戰地) '문단 사절'을 조직할 것을 제안했으며 1941년 시국에 적극 협력할 것을 요지로 하는 라디오 방송을 했다. 1942년 총독부기관지 '매일신보'에 "이미 자란 아이들은 할 수 없지만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려 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김 교수는 매일신보에 연재한 백마강에 주목한다. 백제 멸망사를 다룬 소설은 왕후를 잃은 뒤 주색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한 의자왕이 충신들을 차례로 죽이고 심지어 신하인 복신의 며느리마저 몰래 능욕하려는 모습을 그린다. 김 교수는 "일제의 부여신궁 건립 시책에 부응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서기'의 내용을 적극 수용해 쓴 소설"이라고 평했다.
"내선일체에 바탕한 동근동조론(同根同祖論)이 창작의 대전제였던 만큼 이 작품의 친일 성향은 대단히 농후하다. 백제의 찬란한 문화가 바다를 건너 '야마도(고대 일본)'에 미쳐 오늘날의 대일본제국을 이룩한 초석이 되었다는 것, 백제인과 내지의 야마도 사람이 하나의 혈족이라는 것이 그 같은 전제의 근거였다. (중략) 천황에 대한 충성을 민족의식과 등치시키고 있는 이 작품은 민족과 제국이 친화적 기표임을 증명해 보인다. 이때 민족서사와 제국서사를 호환 가능케 만드는 기제는 양자에 동시에 걸쳐있는 '충'이라는 덕목이었다. 식민지 조선의 2등 신민 김동인은 이 충의 이념을 디딤돌 삼아 제국의 욕망을 품어보려 했던 것이다."
김동인의 이름을 딴 동인문학상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체계적으로 당대의 친일 이데올로기를 반복하고 동포들에게 체제 협력을 촉구한 행위는 개인적 심약이라는 온정주의로 방어하기에 역부족이다. 물론 제1의 모국어 일본어와 제2의 모국어 조선어 사이에서 부유했기에 그 또한 미망에서 자유롭기 어려웠을 것이다. 고급술집에서 마시던 술이 그리 달콤하지 않았을 듯하다. 이종길 기자 leemean@
김병길 지음/글누림/1만3000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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